[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영화 ‘기생충’이 8백만 관객(15일 기준)을 넘겼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치고는 대중성까지 확보한 셈이다.
영화는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기택네 가족과 저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 이 두 계층의 만남으로 야기되는 균열과 파열음을 통해, 극과 극으로 양극화가 진행돼 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슬픈 코미디를 보여준다.
영화는 유머를 보여주다가도 갑자기 심각해지고, 먹먹해지지까지 한다. 감정의 전환은 대사가 아니라 주로 상황(장면)으로 이뤄진다는 게 ‘기생충’의 특징이다. 여기서 전원 백수 가족의 가장인 기택으로 나오는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을 20년 지기 친구라고 했다.
“봉 감독과 깊은 인연이 있다. 서로 존중한다. 나보다 2살 어린 친구다. 한 번도 후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존경하는 마에스트로(거장)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를 ‘알약’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 대해 송강호는 “봉 감독은 저에게 ‘물약’이다. 알약보다 더 쉽게 먹을 수 있다. 물도 필요없다”고 받아쳤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기택은 직업도 대책도 없어 아내 충숙(장혜진)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늘 평화롭다. 연이은 실패로 인해 뭔가 계획해 봐야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몸에 밴 캐릭터다. 송강호는 비주얼부터 그런 아버지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이번 영화에서는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어쩌다 보니 10년간 비중 높은 배역을 맡아왔는데, 이번에는 N분이 1 분량이다.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아들인 최우식의 분량이 나보다 더 많다. 아들과 딸로 나오는 최우식과 박소담이 나를 보고 사석에서도 ‘아빠’라 부르는데, 저 친구들에게 아직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다. 친밀감의 표현이라 뭐라 말도 못하겠다.”
송강호는 ‘기생충’에서는 번득이는 재능을 보여주기보다는 헌신할 방도를 찾았다. ‘이 작품이 원하는 인물이 뭘까’라고 생각하는 헌신의 태도와 소견이 좋은 연기의 표본이라고 했다.
“일부러 이런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다. 오랜만에 편하게 작업했다. 거의 모든 짐을 지고 가는 영화도 있지만, 같이 나눠 지고가는 것도 좋다.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 또 봉 감독이 함께 하자니까 좋았다.”
송강호는 ‘기생충’은 존엄성과 예의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그는 “자존감의 붕괴랄까, 이런 것들이 우발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공생과 상생의 사회를 꿈꾸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영화다”면서 “엔딩은 일반 드라마 투르기는 아니다. 우리의 삶은 진행되는 거니까. 결말이 열려있다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판단을 내려보라고 던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오고, 어떤 분에게는 희극으로 다가올 것이다”고 말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하면 심오한 영화이고 어렵고 철학적이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보는 영화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내용이 쉽다. 그런데도 뭔가를 툭 던지는 묵직함이 있다. 이게 되게 신선하다. 관객들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다.”
김해가 고향인 송강호는 1989년 데뷔했다. 연극 7년, 영화 23년 등 30년간 연기했다. 기자가 “경상도 사투리 톤이지만 발음이 매우 좋다”고 하자, “언어를 위해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연기를 위해 언어를 체득하는 것이다”면서 “배우라면 물론 정확한 발음이 필요하지만, 연기가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평소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드라마는 ‘전원일기’나 ‘대장금’ 광팬이라고 했다. 옛날 드라마를 좋아한단다. 드라마에는 왜 출연하지 않는지 물었다.
“일부러 드라마를 안하는 건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20년전 드라마쪽에서 제의가 왔을 때는 영화에 너무 몰입해 거절했다. 그러다보니 굳어졌다. 일부러 안하는 건 아니다.“
송강호는 ‘기생충’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잘 지킨 영화로 알려진 데 대해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주 52시간제를 지킬 수 있다. 과거처럼 한 두컷 찍고나면 새벽이 돼버린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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