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송혜교 귀걸이’ 마음대로 팔아도 배상액은 100만원?
뉴스종합| 2019-08-02 11:24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장하면서 연예인,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의 초상이나 이름을 무단 사용한 데 따른 법적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무단 도용에 따른 피해 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법원에 따르면 영화 ‘과속스캔들’로 유명한 아역배우 왕석현(16) 군은 최근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는 S사를 상대로 성명권·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했다. 왕 군은 자신의 동의 없이 이름과 얼굴사진을 홍보에 사용한 S사를 상대로 4억원이 넘는 배상액을 요구했지만, 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인정된 배상액은 500만원에 그쳤다.

이는 퍼블리시티권 침해 부분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개인이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 등을 돈을 받고 팔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미국에는 법제화돼 있지만, 우리 민법에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명문 규정이 없다. 왕 군 사건을 맡은 재판부도 “독립적 재산권으로서의 퍼블리시티권이라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법상 성명이나 사람의 초상에 대한 가치는 인격권에 불과할 뿐, 법적으로 보호되는 ‘재산권’이 아니다. 따라서 본인 동의 없이 무단 도용을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게 아니라 인격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된다. 반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면 실제 발생한 손해액을 산정해 소송을 내는 게 가능해진다. 유명인의 얼굴을 무단으로 사용해 수익을 올렸다면, 그 수익에 비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양도나 위탁관리를 맡길 수 없는 인격권과는 달리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의 성격을 가지므로 초상이나 이름에 관한 권리를 전문적인 에이전트에 맡겨 사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 판결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법상 따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유명 배우 송혜교 씨도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해 귀걸이를 판매하던 인터넷 쇼핑몰 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받는 데 그쳤다. 2013년 탤런트 장동건씨 등 연예인 60명도 자신의 사진과 성명을 무단으로 사용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푸딩’ 제작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도 손해배상액은 1인당 300만원씩에 불과했다. 무단도용해 수익을 낸 업체 측에서는 ‘남는 장사’를 하게 되는 셈이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최신 법률사무소의 최승재(48·사법연수원29기) 변호사는 “퍼블리시티권의 본질은 ‘제대로’ 배상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500만원으로 왕석현을 광고모델로 쓸 수 있다면, 누가 굳이 수천만원, 수억원짜리 광고료를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민법에 별도 규정이 없다고 해도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이나 민사상 불법행위에 기초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근거로도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드물긴 하지만 법원에서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가수 백지영씨와 남규리씨는 블로그에 허락없이 사진을 게재한 성형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백씨 등이 입은 손해는 승낙을 받아서 백씨 등의 성명·초상을 사용할 경우에 지급해야 할 상당액으로 봐야 한다”며 백씨 등이 주류나 화장품 광고에서 실제 받았던 금액을 기초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우리나라처럼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일본은 2012년 최고재판소가 판결을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했다. 반면 우리 대법원은 아직 선례를 남긴 적이 없다. 국회 입법도 소극적이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의 길정우 의원 등이 발의한 ‘인격표지권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안’이 있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민경 기자/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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