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사람은 왜 개·고양이를 키울까
뉴스종합| 2019-09-08 21:10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972년 9월, 아프리카 탄자니아 국립공원. 네 마리의 침팬지가 느닷없이 한 마리의 영양에게 달려들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침팬지는 손으로 영양을 툭툭 건드리다가 머리로 영양의 몸통을 비볐다. 영양은 기겁을 하며 펄쩍펄쩍 뛰었지만 침팬지들은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았다. 영양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그 뒤로도 30분간 침팬지들은 영양의 사체를 만지며 장난을 쳤다.

사람을 제외하고 자신과 다른 종의 동물을 키우는 동물은 없다. 우리는 개를 산책시키는 고양이나 토끼한테 밥을 주는 햄스터를 본 적이 없다. 인간과 유사하다고 하는 침팬치, 오랑우탄, 고릴라도 제 새끼가 아닌 다른 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도대체 왜 개와 고양이 등 동물에게 자신의 돈과 시간은 물론이고 포근한 침대까지 내주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2만7000년~4만 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늑대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불을 다루고 무기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는 거친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충직한 동료가 필요했다. 뛰어난 오감으로 먹을 것을 추격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공격하는 늑대는 호모 사피엔스의 약점을 채워주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동물이었다. 가축이 된 늑대는 인간이 농사를 지으며 일정한 지역에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도왔다. 이동하는 인간은 표류하는 인간으로 그 진화의 궤를 바꿨다.

그런데 과학과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해도 인간은 반려동물의 털을 손질하고, 발톱을 정리해주고, 치아를 닦아주고,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는데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수영장도 있고 반려견과 보호자가 교감하기 위한 요가 수업도 있다.

이렇다 보니 과학자들은 인간이 인간 자신의 신체적·심리적 건강을 위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면 인간의 신체 내 ‘사랑의 호르몬’으로 여겨지는 옥시토신의 분비가 활발해지고 반려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은 주인의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연구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미국심장협회〉는 반려동물이 심장병 발병 위험을 억제하고 생존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된 연구결과는 더 있다. 지난 1월 〈미국교육학회〉에 보고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은 개, 고양이 등과 단 10분만 함께 시간을 보내도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를 본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팀은 249명의 대학생을 4개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은 개,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그룹은 다른 학생들이 동물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세 번째 그룹은 허용된 시간 동안 동물 슬라이드쇼를 봤고 네 번째 그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 그룹 피실험자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만 눈에 띄게 뚝 떨어졌다.

반면 이와 정반대의 결과를 드러내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9년 8월 〈스칸디나비안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감보다 더 높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심지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우울증상이 비교적 낮다고 보기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

“인간이 건강해지려고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분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먼 과거에는 인간이 동물과 삶을 공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 수의과학학교 존 브래드죠 박사는 인간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혜택을 얻기 위해 개나 고양이 등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일관적이지 않다보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간의 행동은 그저 인간 본성에 따른 ‘관계 맺음’일 뿐으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펜실베니아 수의과대 제임스 서펠 동물행동학 교수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인간이 인간이 아닌 동물을 해치는 것에 대해 죄의식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간의 행동이 그저 본성이라고 마냥 단언하기 어렵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각 문화권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세계 60곳의 사회 공동체 가운데 개를 키우는 집단은 52곳뿐이다. 이들 중 개를 가족이나 친구로 여기는 집단은 단 22곳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로스앤젤리스 캘리포니아대(UCLA) 지리학과 교수도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섬의 한 부족은 개, 고양이, 새 등 동물들을 자주 죽인다고 설명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동물을 반려자로 여기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동물을 식용으로 기르기 위해 매우 잔인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구상에는 아직까지 반려동물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은 문화권도 있다.

이쯤되니 인간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건 인간이 단지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웨스턴 캐롤라이나대 해롤드 허조그 교수는 미국켄넬클럽(AKC)에 등록된 4800만 건의 반려견 정보 등을 분석한 결과, 25년마다 특정 품종의 반려견을 선호하는 주기가 발견됐다고 분석했다. 인간이 선호하는 반려동물의 외향이나 성격마저도 옷, 악세사리 같은 패션처럼 돌고 도는 유행이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소개했지만 과학자도, 기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한마디로 딱 이렇다 할 답을 내리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다양한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복합적으로 나타난 양상일 수도 있다. 자연은 단 하나뿐인, 잘 설계된 퍼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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