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리즘] 트라우마의 끝
뉴스종합| 2019-09-19 11:09

복기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온 몸을 던졌다. “이쯤 가면 막하자는 거죠”라는 분노가 희화화 해 박제된 16년 전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다. 취임 보름도 안 돼 검찰 인사를 화두로 평검사들과 충돌했고, ‘봉변’을 당했다. ‘토론으로 제압하지 말라’, ‘83학번이 맞느냐’, ‘대통령이 되기 전 왜 검사에게 청탁전화를 했느냐’고 치받았다. 개혁 대상으로 꼽힌 부류의 날선 일격들이었다. 최고 인사권자는 모욕을 참으며 한참 아래 공무원들에게 검찰 지휘부를 바꾸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한 번 하께요, 믿고 갑시다”라는 말과 함께다.

그 때 구석엔 문재인 민정수석이 있었다. 그는 그런 자리를 만드는 걸 만류했다고 노 전 대통령은 설명했다. 국민들이 과격하게 볼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문 수석은 선을 넘은 공방을 때론 겸연쩍게, 한편으론 착잡하게 지켜봤다. 참여정부 뒤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고, 그 대화 6년 후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뉴욕타임스는 부고(訃告)기사에 과도한 검찰 수사가 죽음의 한 원인일 것이라는 요지의 측근 발언을 담아 전 세계에 전했다. 현 문재인 대통령에겐 트라우마가 될 만한 악연이다. 검찰 개혁을 주요 과제로 꼽고 추진하는 배경이다.

그는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앞세운 건 조국 법무부 장관이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에 성공할까. 그들은 전통적으로 ‘셀프 개혁’을 선호해왔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총장은 검찰을 그냥 사랑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단히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법적 하자(瑕疵) 따지기 전에 도덕적으로도 무결점에 근접해야 칼춤을 제어할 수 있다. 조 장관은 처지가 만신창이다. 개혁이 싸움이라면 이기는 싸움이 되긴 힘들다. 문 대통령은 제2·3의 개혁 추진 후보자를 예비하지 않았다. 리스크 헤지를 하지 않은 건 그의 성격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조국에 올인’하는 양상은 그 선택의 성공 여부와 별개로 국가 경영에 유연성이 결여돼 있다는 의심을 확증 단계로 끌어 올렸다.

경제·금융, 어느 한 구석 수세적이지 않은 데가 없다. 부정적 기사엔 ‘가짜뉴스’라는 꼬리표를 달지만, 현장 목소리까지 틀어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엄살을 싹 걷어내고 듣자고 작정해도 만나는 기업·금융인마다 어렵다는 걸 느낀다. 은행들엔 이른바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정신적 외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자장사’로 쉽게 돈 번다고 비난받던 은행으로선 지경(地境)을 넓힐 공간이던 자산관리(WM)·IB(투자은행) 쪽 보폭이 움츠러들 요인이다. 고위험 상품의 은행 판매 금지안을 당국이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괴물 금융상품’이라며 느슨해진 사모펀드 규제도 죄라고 한다.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소비자 보호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 찾기가 관건인데, 그런 유연함으로 핀셋 규제를 할 선구안이 이 정권에 있을지 회의적이다.

진보정권은 도덕적으로 우월하지도, 경제적으로 유능하지도 않다는 트라우마가 국민 사이에 생길 판이다. 삭발이 구국인 줄 아는 측과 무관하게 내년 총선을 넘어 정권 재창출을 거론하는 쪽엔 심각한 낙인일 거다. hongi@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