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프리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뉴스종합| 2019-10-10 11:27

두 달이 채 안 된 이야기다.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위해 서울 도심의 한 식당에 들렀다. 그때에도 밥자리, 술자리의 화제 중 대부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단연 조국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이었다. 좁은 식당이라 바로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또렷이 들렸다. 그곳에서도 막 조 장관 가족의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가 그날 조간신문에 나온 조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부정 입학 의혹 관련 기사를 화두로 꺼냈다. 시들어 가던 이야기꽃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 무렵 쉰이 훌쩍 넘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조 장관 딸이 원래 똑똑한 아이였다’는 내용의 전언을 내놓았다. 돌연 테이블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유명한 ‘퇴장 장면’처럼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섰다. 밥자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퇴장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왜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느냐’,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식사 중에 하느냐’ 등의 당혹감과 불만이 보였다.

지난 8월 9일 조 장관의 지명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런 현상은 조 장관과 그 가족의 위법·탈법 의혹이 불거진 이후 더욱 심해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대기업 중간 간부는 얼마 전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의 검찰 소환이 임박했던 시점이었다. 단톡방의 한 멤버가 흥분이 느껴지는 어조로 검찰을 질타하고 조 장관을 두둔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조용히 있던 일부 멤버가 조심스럽게 역시 ‘톡’으로 해당 메시지를 사실상 두둔하는 글을 잇달아 단톡방에 보냈다. 비슷한 메시지를 올린 사람을 합쳐 봐야 멤버 중 전체의 30% 남짓 밖에 안 됐다고 했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처음 메시지를 올렸던 그 멤버가 ‘검찰 개혁으로 모두 하나가 됐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올렸다. 다소 느슨한 친목을 도모한 단톡방이라 그 글에 반대하는 속내를 드러내고 항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단톡방의 원래 멤버 중 절반 가까운 사람이 그 방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려 줬다. 웃으며 들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씁쓸했다.

지난달 하순부터 서울의 두 곳, 도심의 광화문광장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는 주말과 공휴일이면 ‘조 장관 퇴진’과 ‘검찰 개혁’이라는 상반된 이슈 속에 대규모 거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양쪽의 ‘숫자’를 논하는 것은 유치해 보여 거론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이 분열된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상태를 방치해 뒀다가는 갈라진 민심의 틈을 다시 메우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민을 어루만져야 할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나로 모이는 국민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 못지않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고만 했다. ‘광화문’ 대신 ‘서초동’의 이야기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취임사를 지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마디는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렇게 분열된 나라를 지금껏 경험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신상윤 모바일섹션 이슈팀장/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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