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반인권 수사·소극적 변호 아쉬워…잔혹범 변호 비난 안돼”
뉴스종합| 2019-10-14 11:25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변론을 맡은 박준영(44) 변호사가 수사 당시 범인으로 지목돼 복역까지 마친 윤모(검거 당시 22세) 씨와 만남을 갖는 등 본격적인 재심 청구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박 변호사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윤 씨와 통화를 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윤씨는 통화에서 검거 당시 수사당국으로부터 협박을 당했으며 체포 후에도 가혹수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검거된 날 집에 찾아온 ‘덩치가 좋은’ 경찰은 스스로를 ‘무도 유단자’라고 소개했다. 충분히 위협적 언사였다. 경찰은 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윤 씨에게 쪼그려뛰기를 시켰고, 쪼그려 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발로 윤씨를 걷어찼다. 결국 윤 씨는 경찰에 자신이 8차 사건의 범인이라고 진술했다. 박 변호사는 “윤 씨가 결정적으로 자백을 하게 된 계기는 ‘3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물을 주지 않아서’였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윤 씨의 판결문에서도 수사가 강압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보인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2심 판결문을 보면, 윤 씨가 자백을 한 시간이 오전 5시 40분께로 적혀 있다”면서 “당시에는 밤샘조사가 관행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반인권적인 처사다.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자백이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8차 사건의) 재판이 부실하게 진행된 점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윤 씨는 2심 재판에서 “경찰에 거짓으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당시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인은 윤 씨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고 재판부도 윤 씨의 주장을 외면했다.

박 변호사는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망가졌다. 부실한 변호가 그 중 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면서 “사건을 맡을 때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법조인으로서 나 자신도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강력범죄 변호인에 대한 비판이 멈춰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윤 씨를 놓고서 언론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가 잡혔다고 보도했을 것”이라며 “당시 국선변호를 맡았던 변호인도 윤 씨를 변호하는 데 소극적인 입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들도 잔혹한 살인범죄를 변호한다는 것 자체를 놓고서 비난을 가해선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8차 사건은 1980~90년대,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검거됐던 사건이다. 범인으로는 당시 22세였던 농기구 수리공 윤 씨가 지목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 씨는 복역 중 20년형으로 감형받고 2009년 석방됐다. 그러나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8차 사건도 내가 저지른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윤 씨의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김성우 기자/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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