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등 대기업도 면세사업서 전격 철수
주력 업체들도 줄줄히 수익성 떨어져
따이궁 중심 B2B로 시장 변화 원인
정부는 현실 외면…연말 신규 특허 강행
두타 면세점[두산 제공] |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지난 9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약 18억7200만달러(한화 2조2422억원)로 역대 두번째로 많았다. 9월을 포함한 3분기 국내 면세점 매출은 약 54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23.8%나 늘어난 수치다. 특히 외국인 면세 매출은 45억6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들 숫자만 보면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이 맞는 듯도 보인다.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도 일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도 두산그룹이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한화에 이어 두번째다. 중소·중견 면세점들은 매장을 축소하거나 인력을 감축하는 등 사실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면세점 매출 볼륨과 달리 현실은 면세 시장의 잔혹사다.
더 큰 문제는 면세시장이 따이궁(중국 보따리상) 중심의 B2B(기업대 기업) 시장이라는 기형 구조로 전락하면서 딱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관광 인프라 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규모만 보고 면세 사업권을 남발하다 보니 빚어지고 있는 문제다.
▶대기업 마저 손들은 면세시장= 면세 사업장의 줄폐업은 시장이 지난 2017년 이후 따이궁 중심의 B2B 시장으로 재편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따이궁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가 없고, 이들을 모객할 송객수수료(일종의 리베이트)가 낮은 업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성장동력으로 면세사업에 손을 댔던 대기업들마저 면세시장에서 탈출하고 있다. 면세사업이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두산은 지난 29일 이사회를 열고, 면세 특허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두산이 면세 사업에 진출한지 3년 5개월여 만이다. 이에 따라 두산이 운영중인 서울 동대문 두타면세점은 내년 4월30일에 영업을 종료한다.
앞서 백화점을 거느리고 있는 한화갤러리아도 지난 4월 면세 특허권 반납을 결정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갤러리아면세점63은 지난 9월 말 정식 영업을 종료했다.
이들 대기업 면세점들이 어렵게 얻은 면세 특허권을 사업 기한(5년)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한 것은 면세 사업에 미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양사 모두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 단일 사업장을 운영하는 공통점이 있다. 사업장이 하나다 보니 롯데나 신라, 신세계 등 주력 사업자들과 달리 명품 유치나 바잉 파워(Buying Power) 면에서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면세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것은 사업장의 입지적 장점이 약점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유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면세 시장의 주요 고객이 된 따이궁은 여행사가 데려다주는 면세점에서 주문 받은 물품만 기계적으로 사들였다. 덕분에 수수료가 적고 명동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사업장에는 방문하지 않았다. 관광지 입점이 오히려 단점이 된 것. 여기에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더이상 갤러리아면세점63이나 두타면세점에는 기회가 없어졌다.
서울 시내 면세점 모습[연합뉴스] |
▶따이궁 중심 B2B로 전환…매출 커져도 수익은 ↓=면세점의 줄폐업의 핵심 원인은 면세 시장의 판도가 변했다는 것이다. 국내로 몰려오며 면세점의 주요 고객들이던 유커들이 지난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발길이 끊기면서 면세점들이 더이상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후 면세점 업계의 구세주가 된 것은 바로 따이궁이다. 온라인몰이 발달한 중국에서 믿고 살 수 있는 한국의 면세점 물건이 날개돋힌 듯 팔리자 이들의 주문을 받아 물건을 대량으로 사가는 따이궁들이 면세점의 주요 고객이 된 것이다. B2C 위주였던 면세 시장이 2년 반만에 B2B 시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덕분에 면세점들은 다양한 국내 상품을 여러 방법으로 알리기 보다는 이미 유명한 해외 명품들을 대량으로 판매하고, 모객을 위한 수수료를 여행사들에게 아낌없이 지불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입지 조건이 불리하거나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유통 계열사가 없거나(두산) 유통계열사와 별도로 업장을 운영한(한화) 대기업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화와 두산 역시 폐업 직전 누적 적자가 각각 1000억원과 600억원에 이른다.
주력 사업자 역시 매출은 커지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2015년 이전까지만 해도 5~10% 수준이었던 영업이익률이 최근 2~5%까지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호텔신라는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21% 늘어난 1조4753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16% 감소한 574억원에 불과했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롯데면세점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정부…“면세점만 늘려선 外人 안온다”=면세업계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변화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예정대로 올해 연말 신규 면세 특허권을 발급할 예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 올해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서울 등을 중심으로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에 지난 2월 관세법 개정을 통해 면세점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춘데 이어 5월에는 ‘면세점 제도운영위원회’에서 서울 3곳 등 총 6곳의 신규 면세 특허권을 발급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아직도 면세 시장을 유커 대상의 B2C 시장으로 봐 면세점 확대가 곧 관광 산업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면세시장이 이미 B2B 시장으로 변질된 만큼 사업장의 확대는 곧 출혈 경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정부의 의도대로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면세점 수를 늘리는 것보다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게 면세업계는 물론 관광업계의 중론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 시장의 매출이 상위 3사에 80%가 집중되는 등 쏠림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허가하면 출혈 경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arri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