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1년의 긴 기다림…블리자드 CEO ‘용의 귀환’
뉴스종합| 2019-11-22 11:09

“우리의 결정은 너무 섣불렀고 소통은 너무 느렸다. 우리가 세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

알렌 브랙(J. Allen Brack)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2019(Blizzcon2019)의 시작을 선언하면서 사과의 말부터 전했다. 그리고 이틀에 걸친 행사가 끝났을 때 게임 사용자들은 블리자드를 연호하며 집으로 향했다. 블리자드 최대 연례 행사이자 전세계 게임 사용자들의 눈과 귀가 몰리는 블리즈컨2019의 확연히 다른 시작과 끝은 그의 취임 1주년을 압축시킨 동시에 그의 미래를 가늠케한 환영의 무대였다.

▶블리자드의 전부였던 ‘마회장’의 그늘 = 브랙이 왜 사과의 말부터 꺼내야 했는지 알려면 마이크 모하임 전 CEO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91년 앨런 애드햄과 블리자드의 전신인 실리콘 앤 시냅스(Silicon & Synapse)를 공동창업한 뒤 2018년 10월까지 블리자드 CEO를 지냈다. “멋진 게임을 만든다”(We make great games)는 사명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을 만들어냈다. 한국 PC방 문화에 감명 받은 그는 자주 한국을 찾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게임 사용자 사이에서는 ‘마회장’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하다.

그런 그가 블리즈컨2018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퇴임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건 당연했다. 지주회사인 액티비전블리자드 경영진과 불화에 따른 퇴임 가능성이 제기됐고 가뜩이나 리그오브레전드(LoL)에 왕좌를 내준 뒤 불안한 시선을 보내던 투자자들까지 블리자드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물론 브랙이 게임 개발자로서의 쌓은 경력과 블리자드에서의 명성은 최고 게임회사의 CEO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1994년 일렉트로아트(EA)의 전신인 오리진시스템의 협력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게임 관련 경력을 시작한 브랙은 2000년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면서 스타워즈갤럭스를 개발했다. 2005년 블리자드로 옮긴 뒤 줄곧 WoW개발에 참여했다. 2006년 출시한 WoW-불타는성전은 그가 블리자드에서 내놓은 첫 작품이다. 2008년 WoW개발 책임자가 됐으며, 2014년에는 WoW수석 부사장 겸 총괄 프러듀서가 됐다.

모하임은 그런 그가 블리자드의 훌륭한 게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제아무리 12년을 동안 블리자드의 영광을 함께 한 브랙이라도 27년 간 성공 가도를 달린 CEO의 뒤를 이으면 ‘구관이 명관’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시행착오 그리고 성공 = 브랙의 CEO 초반 성적은 낙제점이었다. 블리자드는 하스스톤 리그를 폐지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샀다. 디아블로4를 기대한 게임 사용자에게 새 모바일게임 디아블로 이모탈(Diablo Immortal)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마치 PC나 콘솔이 아닌 모바일로 게임 개발 무게중심을 이동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조직 장악력에도 물음표가 붙었다. 2019년 들어 블리자드에서 221명을 해고하는 등 조직을 슬림화했다. 참신한 신작이나 기존 대작의 흥행을 이어갈 업데이트를 책임질 인재들이 떠난다는 소식을 반길 게임 사용자는 없었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별다른 이유없이 물러나고 바비 코틱 액티비전CEO와 설전을 주고 받는 등 경영진 간 분쟁이 불거졌다.

이 와중에 후속작 출시와 업데이트는 지연되면서 실적마저 악화됐다. 모하임 퇴임 직전인 2018년 3분기 6억 달러를 넘겼던 블리자드 매출은 2019년 1분기 3억44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주가는 이 기간 50%가량 주저앉았다.

브랙을 살린 건 그를 현재의 자리에 있게 한 WoW였다. 지난 8월 출시한 WoW클래식은 출시 첫날 트위치에서 최고 동시 시청자수가 11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게이머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는 게임 출시일 기준 최고 동시 시청자 수 신기록이다. 24시간 동안 누적 시청자 수는 610만명에 달했다. 출시 2주가 지나도록 시간당 평균 시청자는 20만명을 유지했다. 15년 된 MMOFPG WoW를 클래식 버전으로 출시하자 향수에 젖은 게임 사용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버워치는 3~4개월마다 신규 캐릭터를 업데이트하면서 기존 게임 사용자들을 붙들었고, 출시된지 20년이 된 스타크래프트는 7월 카봇 버전을 내놓으면서 게임 충성도를 높였다. 투자은행(IB) 스티븐스의 제프 코헨 연구원은 CNBC방송에 “신작은 소비자 신뢰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게임회사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면서 “오래된 핵심 브랜드에 집중하는 것이 (블리자드의) 전략의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브랙은 E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게임 업계가 신작을 더 빨리, 자주 출시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지만 준비가 완벽히 돼야 출시한다는 블리자드의 전통을 지키겠다는 뜻을 확고히 밝히기도 했다. 그는 “모든 준비는 준비가 됐을 때 끝나는 것”이라며 “게임 출시가 늦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그게 얼마나 멋진 것인지다”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같은 달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블리자드의 중심은 PC라며 그간의 오해에 종지부를 확실히 찍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블리자드는 앞으로도 PC게임 중심의 개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리즈컨2019는 그 정점에 있다. PC/콘솔용 정식 버전 디아블로 4 출시 계획을 공개하고 시네마틱 트레일러(게임 동영상)가 상영되자 관중들은 환호했다. 오버워치2의 영상도 함께 공개하면서 신규 게임에 대한 기대를 한것 끌어올렸다. 비록 구체적인 출시일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팩트세트에 따르면 블리자드는 신작 효과로 2020년 순이익이 21%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가는 지난 2월 저점 대비 이후 30% 이상 상승하며 주목 받고 있다.

▶중국에서의 기회, 중국으로부터의 위기 = 블리자드는 PC/콘솔 게임의 강자이지만 게임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모바일에는 한참 뒤처져 있는게 현실이다. 브랙은 중국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뛰어난 게임 개발력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텐센트, 넷이즈와 손잡았다. 텐센트와 넷이즈는 중국 모바일 시장 점유율이 51.1%, 14.8%(2018년 1분기 기준)에 달한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중국 정부기관에서 발급하는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이 라이선스는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각기 다르게 발급된다. 당연히 중국 기업에 라이선스 발급이 훨씬 너그럽다. 텐센트, 넷이즈를 파트너로 둔다는 것은 블리자드에게 천군만마인 셈이다. 하지만 점차 심해지는 중국 의존도는 블리자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0월 대만에서 열린 하스스톤 아시아태평양 그랜드마스터즈 대회에서 터진 우승 소감 논란은 그 정점에 있다. 우승자인 홍콩 출신 블리츠청은 소감 도중 홍콩의 독립을 외쳤다. 블리자드는 그의 대회 참가를 1년간 금지했다. 발언을 도운 캐스터들은 사실상 해고됐다.

블리자드는 그가 정치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일고 블리자드 보이콧 움직임까지 커지자 블리자드는 블리츠청의 대회 금지 기간을 6개월로 낮췄다. 브랙은 블리즈컨에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브랙은 최근 E스포츠옵서버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으며 조직적으로도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데) 미성숙했다”고 말했다. 또 “이 사건이 국제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몰랐다. 확실히 힘든 한 달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신규 게임 출시에 더 깐깐해지는 것도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골드만삭스 자료를 인용, 2017년만해도 중국에선 한 달에 수백건씩 게임이 쏟아졌지만 지난달엔 신규 게임 수가 71건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지난해엔 9개월 간 신규 게임이 하나도 출시되지 않았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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