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문 열면 미세먼지, 닫으면 연탄가스… 구룡마을 주민들 이중고
뉴스종합| 2019-12-11 11:02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입구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모습. 마을 뒤 대모산이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박상현 기자]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미세먼지도 불안한데 연탄가스(일산화탄소) 냄새가 더 무서워서 문을 열어놔요, 얼마나 독한지 100명도 더 죽이겠더라고” 서울 강남구의 마지막 남은 판자촌 구룡마을에 30년 이상 거주한 주민 김모(80) 씨는 이번 겨울 연탄가스 배출기를 설치했다. 이전엔 연탄가스 냄새가 심해지면 창문을 열어 환기했지만, 최근 심해진 미세먼지로 그마저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하지만 고체화 되어 배출기에 달라붙은 연탄가스 덩어리가 바람이 불면 다시 역류해 결국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1일 오전 7시 방문한 구룡마을은 입구에서부터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다닥다닥 붙은 나무 판잣집 너머 대모산과 구룡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능선만 까맣게 겨우 보였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난방을 했다. 열 방출을 막기 위해 지붕 위에 올려둔 모포 재질의 보온덮개 위에는 곰팡이와 이끼가 끼어있었다. 대부분의 집 밖에는 다 쓴 연탄들이 놓여 있었다.

11일 오전 방문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한 판잣집 앞에 사용한 연탄이 쌓여 있다. [사진=박상현 기자]

쌓여있는 연탄 앞에서 미세먼지 측정기를 켜자, PM2.5 수치는 최고 201.1 ㎍/㎥, PM10 수치는 281.6 ㎍/㎥까지 치솟았다. 마을 초입에서 측정기를 켰을 때 나왔던 PM2.5 148.4㎍/㎥, PM10 207.7㎍/㎥보다 조금 더 수치가 올랐다. PM2.5는 1000분의 2.5㎜보다 작은 초미세먼지를 PM10은 1000분의 10㎜보다 작은 미세먼지를 뜻한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최근 들어 추위와 함께 심해진 미세먼지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일산화탄소 배출을 위해선 창문을 열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미세먼지에 노출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창문을 열어 미세먼지를 맡는 쪽을 택했다. 주민 최우메자(79)씨는 “연탄을 안 때면 추워서 못 산다”며 “저녁에 잠에 들 때마다 가스 냄새 때문에 불안해 밖에 미세먼지가 심해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59)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연탄가스 냄새 때문에 산 밑에 있어도 답답한데, 미세먼지까지 심해지는 날이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주민 김두일(68)씨는 “미세먼지보다 일산화탄소가 더 무서워 배출이 안 되면 중독이 되니까 미세먼지가 심해도 문을 연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숨이 차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힘들어 했다. 20년 째 구룡마을에서 홀로 살고 있는 신모(73)씨는 “젊었을 때는 마스크를 써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숨차고 답답해서 힘들다”며 “그래도 미세먼지 때문에 두꺼운 것을 썼다”고 말했다. 신 씨는 대화 도중 숨이 차다며 마스크를 벗고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았다. 김 씨도 “오늘 밖에 나가지 말라고 문자가 왔지만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끼고 나왔다”며 “마스크를 차면 숨이 차고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잘 안 보여 힘들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의 또 다른 문제는 바람에 날려 방으로 들어오는 보온덮개 가루이다. 구룡마을에서 30년 거주한 양원택(69)씨는 “보온덮개 가루가 호흡기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이라고 들었다”며 “내 집 환기 시키려다 옆집의 그 가루가 들어올 수도 있고 미세먼지가 들어 올까봐 창문도 열 수 없어 더 곤욕이다”라고 말했다. 구룡마을에서 20년 째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명숙(66)씨는 “미세먼지랑 가루들이 날아오지만 항상 마스크로 싸맬 수도 없고 생업이니 몸에 안 좋다고 해도 그냥 산다”고 말했다.

이러한 초미세먼지는 노인층 건강에 특히 악영향을 준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정책리포트 ‘고령화와 초미세먼지 건강영향’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가 10㎍/㎥ 증가할 때 서울시 고령자의 사망위험은 13.9%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연구원측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서울시가 WHO 권고기준을 달성하지 못해 발생하는 고령자 조기사망자 수는 2015년 1162명에서 2030년 2133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난 2017년부터 노인복지시설 등에 초미세먼지 마스크를 무료로 보급하는 등 초미세먼지에 대한 고령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연탄가스와 미세먼지로 인한 이중고, 숨이 가빠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는 현실 등 좀 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날 국립환경과학원은 아침까지 대기 정체로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에 낮 동안 국외에서 미세먼지가 추가적으로 유입돼 전권역이 미세먼지 ‘나쁨’, 오전 수도권은 농도 ‘매우 나쁨’이 될 것으로 보았다.

pooh@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