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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집값에만 집착하다 잃어버린 것들
부동산| 2019-12-16 11:19

“요즘은 재건축·재개발 한다고 하면 처음부터 서울시에서 나와서 주민들에게 예상분담금에 대한 설명을 해줘요. 사업 시작할 땐 추가 비용 없다고 해놓고 나중에 돈 더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사업비를 부풀려서 분란 생기는 사업장이 많으니까 시에서 미리 정확하게 알려주겠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는 걸 좀 보세요.”

서울 관악구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얼마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그는 분담금이 많아봐야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던 것이 정부 정책 때문에 졸지에 거짓말이 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서울시는 정비사업 초기에 정확하고 공정한 사업비와 분담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민 갈등을 줄이고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해왔다. 지난 13일에는 추정분담금 검증위원회 운영기준을 만들고 정확한 사업비 산출 기준을 정비하는 등 추정분담금 검증체계를 개선했다고 보도자료를 내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현재 정비사업비의 예측가능성을 가장 많이 흔드는 것은 정부라고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임대주택 비율 확대, 분양가 상한제, 도통 이유도 알 수 없는 인허가 퇴짜 등 사업을 시작할 때 예상할 수 없었던 정책 변수가 현 정부 들어 줄줄이 생겼다는 것이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정비사업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다른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셈이다.

집값에 밀려버린 것은 현 정부가 집권 초기 내세운 중요한 정책 과제도 예외가 아니다. 가령 정부가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던 후분양제는 현 정부에서는 물건너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집값 안정을 위해 3기 신도시 등에 주택을 빨리 공급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면서 모조리 선분양으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후분양하겠다는 것까지 죄악시하며 막아서는 형국이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후분양을 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오자, ‘후분양을 하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며 채찍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마포구 내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동네임에도 공덕동은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고, 아현동은 상한제를 적용하는 이유가 바로 아현동은 후분양을 하려다 정권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라니 말이다.

현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안전’ 문제도 그렇다. 지어진 지 수십년이 지나 벽에 금이 쩍쩍 가고, 주차공간이 없어서 단지 내에 차가 빼곡히 들어선 탓에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지나기 힘든 아파트가 재건축 인허가를 통과못해 방치되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천운으로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지난해 용산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상가 건물이 폭삭 무너져버린 일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집값 폭등에 묻혀 잊혀져버린 듯 하다.

수십조원을 쏟아붇겠다는 이 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인 ‘도시재생뉴딜’이 속 빈 강정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도시재생이 가장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첫손에 꼽는 서울을 집값 상승이 무서워 쏙 빼놓아버린 데다, 도시재생의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인 재건축·재개발을 막아버리니 사업에 성과가 날 리 만무하다. 정권 첫 해 야심차게 발표했던 ‘임대사업등록 활성화 정책’은 다주택자에게 투기 꽃길을 깔아줬다는 비판을 받은 뒤 ‘비활성화’로 방향을 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높이겠다’는 계획 역시 ‘부동산 관련 모든 세금을 높이겠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듯 보인다.

집값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과제 못지 않게 하나하나가 중요한 가치였음에도 그 모두가 집값에 희생돼버렸다. 집값도 잡지 못한 채로 말이다. 다수 전문가들의 말마따나 시장 원리에 따라 어차피 오를 집값이었다면, 애시당초 ‘집값’을 정책 목표에서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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