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秋 ‘공소장 비공개’ 일파만파…법조계 “정권비호 조치” 비판
뉴스종합| 2020-02-05 11:4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법무부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이례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소강국면에 접어든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권 보호용 조치라는 비판과 함께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5일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어왔다”며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전날 송철호 울산시장 등 13명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검찰이 구성한 공소사실 요지만 전달하기로 했다. 60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에는 청와대가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비위첩보를 경찰에 넘기는 과정과 송 시장이 출마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중요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한 이후 비공개 조치가 취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가 수사 필요성을 고려해 검찰이 비공개 의견을 낸 적은 있었지만, 공개하기로 한 공소장을 법무부 단계에서 비공개 결정한 것은 전례가 없다. 이번 사건 수사팀 역시 공소장 공개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가 법무부를 생략하고 직접 검찰에 요구해서 공소장을 받을 경우 법무부와 대검 간 갈등이 재현될 소지가 다분하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취해지지 않던 조치가 청와대 관련 사건에서 나온 것은 정권 보호용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외교, 안보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지방선거 당시인 2018년 추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였고, 당대표 시절 부실장이었던 정 모씨는 송철호 울산시장 단수공천 배경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 받았다.

현행법 위반 소지에 대해 법무부는 ‘요약문을 공개했으니 자료요청에 불응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소장 원문은 인권 및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법령 상위개념”이라며 “국회 자료요구에 불응한 것이 아니라 요약문을 전달했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가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공소장 대신 혐의사실을 짧게 요약한 내용만을 전달했다.

법무부가 이 과정에서 법을 어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법무부의 조치는 정권비호를 위해 원칙을 파괴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지만, 법령상 공소장 공개가 의무된 게 아니고 요약문 형태로 제출했기 때문에 위법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반면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가 자료제출을 요청한 기관은 대검찰청이고, 법무부는 검찰 및 법무사무를 관할하는 기관으로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막았기 때문이다. 또, 추 장관은 법무부 일부 참모들의 반대에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현직 검사장은 “법무부가 대검찰청으로 하여금 공소장 비공개라는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구조”라며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의 소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형사사건을 많이 다룬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공소장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법무장관의 지시로 대검이나 법무부 실무진이 위법이나 의무가 없는 일을 하게 됐다는 근거가 성립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했다.

헌법상 공개재판 원칙을 고려했을 때 ‘헌법가치 수호’를 명분으로 한 공소장 비공개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공판과정에서 검사는 가장 먼저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담은 공소장을 낭독하는데, 법무부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공판 단계에서 공소장이 공개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일선검사는 “공소장은 공판 첫 단계에서 공개가 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는 관련성이 떨어진다”며 “어차피 공개될 정보이기 때문에 대검에서도 국회의 요구에 그간 응해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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