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1982년생 김지영 씨는 2010년생과 2013년생, 두 자녀가 있다. 워킹맘인 김씨는 이번주 화·수·금요일 세 번 마스크 재고가 있는 약국을 찾아 긴 줄을 서야 한다. 주말을 활용할까 했지만 물량이 충분하다는 보장이 없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당번 약국을 찾아야 하고, 그곳에 유아용 마스크가 있는지는 또 미지수다.
정부가 9일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처럼 현실을 반영하고, 감수성 있는 조치를 취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주말 새 급히 확대한 대리구매 허용 범위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정리하면 ▷미성년자나 노인이 홀로 약국을 찾으면 본인 생년을 기준으로 살 수 있지만 ▷보호자와 함께 찾으면 보호자의 생년이 기준이고 ▷보호자에게 대리구매를 맡길 경우 다시 미성년과 노인의 생년이 기준이 된다. 당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보호자와 함께 가면 보호자 편의를 고려해 그의 생년을 기준으로 하면서도, 대리구매 시에는 피보호자를 기준으로 한 부분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민은 “마스크 수량이 부족하다더니, 일부러 허들을 만들고 헷갈리는 기준을 제시한 느낌마저 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리구매를 제한한 문제에 대해 “공평한 분배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공평성 또는 형평성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주말 새 일부 대리구매 범위는 확대됐지만 여전히 고3 학생, 70대 노인, 재택근무가 어려운 중소기업 직장인들을 기어이 줄 세우는 것이 공평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로 약국 시스템을 활용하더라도 세대주의 생년 기준으로 5부제를 적용하면 세대원 중 시간이 되는 사람이 마스크 구매에 나서거나, 세대원이 돌아가며 개인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현재보다 상황이 한층 무난해질 수 있다.
상당수는 세대주를 기준으로 판매하는 주민센터 활용 방안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각 주민센터에 고유 업무가 있어 쉽지 않다”며 “마스크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주민센터를 통해 한정된 물량을 배부가 아닌 판매를 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고유 업무를 해야 한다”는 대답에 대해 반문하고 싶다. 지금 마스크 판매만큼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주민센터를 활용하면 시민은 마스크를 찾아 약국을 전전할 필요가 없고, 세대원 중 1인이 세대주를 기준으로 5부제로 구매하면 대기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물량 부족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이에 따른 주민 동요를 일선 약국이 짊어지는 게 맞는가. 우체국·농협·약국으로 나뉜 물량을 주민센터에서 일원화할 수는 없는가.
정부가 망설이는 사이 전국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주민센터를 활용한 ‘마스크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도 고유 업무는 있을 터다. 지자체 의지에 따라 어떤 주민센터는 무상 배분이나 판매를 시행하고, 대다수 주민센터는 손놓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첨언하자면, 맞벌이 부부와 노약자들을 위해선 토요일 마스크 판매나 통반장 방문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