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경찰, ‘박사방’ 수사로 암호화자산 익명성 허문다
뉴스종합| 2020-03-26 09:26
경찰 로고.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경찰이 일명 ‘박사방’과 ‘n번방’ 수사를 계기로 암호화 자산의 익명성을 허물고 있다. 당초 암호화 자산의 익명성 보장은 자금 세탁 우려에도 상속, 증여 등에서 자유로운 요인으로 작용해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익명성이 범죄의 도구로 전락하자, 경찰과 국내 주요 암호화 자산 거래소들은 적극 공조에 나서고 있다.

26일 경찰과 암호화 자산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미성년자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과 ‘박사방’ 가입자들은 결제 수단으로 암호화 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대부분 ▷거래소에서 암호화 자산을 구매하거나 ▷암호화 자산 구매 대행업체를 이용해 송금하는 방법 중 하나를 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비트코인·모네로 외의 암호화 자산을 활용한 가입자들은 비교적 쉽게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은 공개원장을 통해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고,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을 추적할 수 있어 익명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모네로와 같은 ‘다크코인’은 매수자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한다. ‘박사방’이 가입 신청자에게 주로 모네로를 요구한 이유다.

다만 경찰은 국내 주요 암호화 자산 거래소는 물론 구매 대행업체에도 협조를 요청해 모네로의 익명성을 허문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주요 암호화 자산 거래소들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수사 당국에 적극 협력키로 했다. 이들 거래소는 이용자 가입 시 개인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며, 암호화 자산 구매 시 시중은행 계좌에 연동시키고 있어 추적이 수월하다. 해당 거래소들은 회원 정보, 거래 내역 등이 담긴 명단을 경찰 측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암호화 자산에 대한 선입견을 벗고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계기로 삼는 분위기다.

암호화 자산 거래에 능숙하지 않은 일부 가입자들이 모네로 구매대행 업체를 이용한 것도 수사에는 호재다. 구매 대행업체 B사는 모네로 대리 구매를 요청한 이용자의 이름, 연락처, 이메일 등을 필수 기재하게 했으며,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회원의 명단을 전달했다. 구매 대행을 신청한 회원 중에는 업체 측에 “모네로를 ‘박사방’으로 보내겠다”고 직접 말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암호화 자산 거래소를 통해 송금했거나 개인 암호화 자산 지갑을 통해 거래했다면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온다. 해외 암호화 자산 거래소의 개인정보 파악 정도와 국내 수사기관의 요청에 협조할 지 여부가 관건이다. 후자의 경우 경찰은 ‘박사방’ 사건 주범 조주빈(25)을 통해 해당 대화방 운영에 사용된 암호화폐 지갑을 먼저 확보하고, 이 주소에 암호화 자산을 보낸 주소들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모네로는 다른 암호화 자산에 비해 추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거래소의 협조나 대행업체에 남긴 이름, 연락처 등을 활용해 최대한 추적할 방침이다. 상당 부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B사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항이라 길게 드릴 말씀은 없다. 협조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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