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백낙청 교수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행적 평가는 나중 일”
뉴스종합| 2020-07-13 11:35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추도사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 시장의 서울특별시장(葬) 영결식이 13일 오전 시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운데 공동장례위원장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추도사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성추행 혐의 피소 뒤 극단적 선택, 시민 예산으로 치르는 기관장(葬) 등이 논란이 되며 대한민국이 마치 두동강 난 양 여론이 양분된 상황에서 비록 시민사회 편에서지만 사회 원로의 혜안은 곱씹어볼만하다.

‘창작과 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좌파 운동가인 백낙청(82) 서울대 명예교수는 품 속에 넣어둔 종이를 꺼내 조사(弔詞)를 읽었다. 백 교수는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시니 비통함을 넘어 솔직히 어이가 없다. 사는 동안 나도 뜻밖의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내가 박원순 당신의 장례위원장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거의 20년 터울의 늙은 선배가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예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보탰다. 고 박원순 시장은 64세로 세상을 등졌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에 대해 백 교수는 “(박 시장이)우리 사회를 크게 바꿔놓은 시민운동가였고, 시장으로서도 줄곧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던 당신을 떠나보내는 바람에 시민사회의 애도를 전하는 몫이 내게 주어졌을 때 사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백 교수는 그러면서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다. 애도가 성찰을 배제하진 않지만, 성찰은 무엇보다 자기성찰로 시작된다”며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다”며 우리 사회의 성급함을 에둘러 비판했다.

백 교수는 “한 인간의 죽음은 아무리 평범하고 비천한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애도 받을 일이지만, 오늘 수많은 서울 시민들과 이 땅의 국민과 해외의 다수 인사까지 당신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었고, 특별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정작 고인과 많은 일을 함께 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개 당신이 ‘일은 저희가 다 할 테니 이름이나 걸고 뒷배가 되어주십시오’ 해서 따라했고, 더러는 내가 주도하는 사업에 당신을 끌어들이면서 당신도 바쁜 줄 알지만 이름이라도 걸어넣고 이따금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 어느 경우든 내가 항상 놀라고 탄복한 것은 끊일 줄 모르고 샘솟는 당신의 창의적 발상, 발상이 발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게 만드는 당신의 실천력과 헌신이었다”고 평했다.

백 교수는 “이미 당신의 죽음 자체가 많은 성찰을 낳고 있다. 당신의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과 언론계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며 “그러나 애도에 수반되는 이런 성찰과 자기비판이 당신이 사는 동안 일어났고, 당신이 빛나게 기여한 우리 사회의 엄청난 변화와 진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건강한 시민운동이 쇠퇴하는 판국에 더욱 돋보이는 우리 시민사회의 활력을 망각하게 만든다면, 이는 당신을 애도하는 바른 길이 아니며 당신도 섭섭해하실 일일 것”이라며 건강한 비판을 옹호했다. 그는 “그리운 원순씨, 박원순 시장. 우리의 애도를 받으며 평안히 떠나시라. 이제는 그런 평안만이 유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조사를 마쳤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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