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파국으로 치닫는 ‘나일강 물전쟁’
뉴스종합| 2020-07-18 09:01
에티오피아 정부가 나일강 상류 청(blue)나일강에 건설중인 초대형 댐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ERD)’의 모습.[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에티오피아 정부가 결국 나일강 상류에 건설중인 초대형 댐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ERD)’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연합(AU)의 중재로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나일강 수계 수자원 활용에 관한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의 협상이 결국 무위로 끝난 것에 대한 에티오피아 측의 대응이다.

이로써 ‘나일강 물전쟁’은 최악의 경우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소득없이 끝난 10년간의 협상

셀레시 베켈레 에티오피아 수자원부 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국영방송 EBC에 출연해 GERD에 물을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거대한 댐이 1억1000만 에티오피아 국민에게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결정적 기회를 줄 것”이라며 “댐 건설과 물 충전은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댐이 완공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에티오피아 관리들은 이집트, 수단이 참가한 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이유에 대해 “이집트 측이 무분별하고 과도한 요구 사항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는 GERD 때문에 나일강 수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 측은 댐에 물을 가두기 전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담수에 관한 문제는 자국의 권리며 강수랑이 풍부한 우기에 물을 가두기 때문에 주변국에 대한 영향도 별로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담수 결정에 협상에 함께 참여한 인접국 수단은 즉각 비난 성명을 냈다.

16일 수단 측은 “GERD 담수가 시작되면서 나일강 하류 지역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며 “이는 매우 일방적인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도 에티오피아 측에 “즉각적으로 해명하라”며 압박했다.

에티오피아 ‘경제부흥’ vs 이집트 ‘생존 위협’…동상이몽

에티오피아는 GERD 건설이 국가 경제 부흥의 첫 신호탄을 쏘는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2011년부터 GERD 건설에 나섰다. 저수량 740억t으로 한국 최대 소양강댐(29억t)보다 25배 이상 크다. 댐 높이 155m, 길이 1.8km에 이르고 공사비는 46억달러(약 5조500억원)가 들었다.

에티오피아는 이곳에 6000MW급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전 국민의 65%인 7000만명이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을 타개하고, 이웃 나라에 전력을 수출해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GERD 건설에 나섰다. 오는 2023년 완공 예정이며, 현재 공정률은 약 70%다.

나일강 상류 청(blue)나일강 물줄기를 막아 건설하는 GERD의 총 담수량은 740억 세제곱미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집트에선 에티오피아가 나일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짓고 물을 채워 수자원을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생존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나일강 상류 청(blue)나일강에 건설중인 초대형 댐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ERD)’의 담수 전(상단 사진)과 후의 차이나는 모습. 상단 사진은 지난달 26일 촬영됐으며, 하단 사진은 지난 12일 촬영됐다. [AP]

나일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집트 인들에게 나일강 유량은 매우 중요하다. 이집트 인구의 90% 이상이 나일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농업·어업·교통·관광 등의 용도로 활용한다.

이집트 정부는 나일강 유량이 2% 줄어들면, 20만 에이커의 농경지를 잃어 약 100만명의 생계 위협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복잡한 국제 관계…군사적 충돌 우려도

이집트가 에티오피아의 댐 건설에까지 관여하는 주된 근거는 지난 1929년 영국 정부가 이집트에 부여한 나일강 상류 사업에 대한 거부권이다.

실제 이집트는 1960년부터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군사적 압력까지 가하면서 상류 국가들의 댐 건설을 가로막았다.

이집트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만약 일방적 담수가 진행될 경우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찍이 1970년대 당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댐이 지어지면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위협한 것과 유사하다.

양국의 협상에는 미국을 비롯해 국제연합(UN), AU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2월에는 맹방 이집트의 요청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역시 미국의 동맹국인 에티오피아가 미국 행정부의 이집트 편파성을 이유로 회담에 불참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에서도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자국에 본부가 있는 AU에서 풀기를 원하지만, 이집트는 UN 안전보장이사회 등에서 다루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이해 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있다.

나일강 수계 지역 주변도 [BBC]

에티오피아의 일방적 담수 결정에 비난 성명을 낸 수단 역시 GERD 건설의 수혜국이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나일강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남수단과 케냐, 지부티 등 에티오피아 주변 국가들은 직접적인 입장을 표명하진 않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로부터 값싼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GERD 건설을 반기는 입장이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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