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코로나 터널’ 에 갇힌 靑春…“니들이 Z세대를 알아?”
뉴스종합| 2020-09-11 11:26

Z세대(1997~2012년생)가 칠흑의 터널에 갇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헤매고 있다. 전문가·언론이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세대 묶음’을 했던 각양각색의 세대(베이비부머·X·밀레니얼)는 접할 수 없던 그런 절벽 앞에 놓였다.

이전 세대는 ‘2차세계 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냉전’ 등 전 세계적 대결 구도의 부침 속에서도 고생 끝에 성장의 과실을 따먹었다.

Z세대는 다르다. 출생 때부터 풍요와 함께 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그들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직장에서도 유연한 경향이 강하고, 앞선 세대와 비교할 때 술과 약에 자제력을 발휘하며 위험을 회피하려는 부류로 특징 지어졌다. 부족한 게 없으니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이들에게 ‘대정전(大停電)’이다. 모든 기회를 박탈당한 분위기다.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의 특권을 누릴 청춘이 그래서 불안하다. Z세대 막내 그룹에 속한 이들은 대학 입시에 전념해야 하는데 학교가 문을 닫았다. 직장을 구할 나이대에 있는 젊은층은 폐업이 속출하는 경제 전장에서 이력서를 낼 곳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명·경제적 피해가 가장 심한 미국에선 Z세대의 불안과 심경이 몇몇 여론조사를 통해 포착되고 있다. 기업과 경제·정치가 이들의 심리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조짐이다. 남의 나라 얘기라고 안심해선 안 된다. 또래집단이 공유하는 동질의식에 전세계가 삽시간에 감염될 수 있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열 중 넷 자살 ‘심각 고민’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센터는 미 젊은 성인(18~29세)이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Z세대가 포함된 연령층이다. 부모 둘다 혹은 한 쪽과 동거한다는 이들의 답은 52%로 나왔다. 대공황 직후인 1940년 이 비율이 48%로 이제까지 최고치였는데, 80년만에 기록이 깨진 것이다. 미국에선 18세가 넘으면 무조건 부모와 따로 산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는 상황이어서 의외의 결과다.

이렇게 된 건 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탓이라는 평가다. 지독한 감염병이 야기한 경제적 불확실성과 고공행진 중인 실업률 때문에 독립적인 생활을 하던 젊은층도 부모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게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부모와 동거 중이라고 답한 젊은 성인의 비율은 50%를 넘겼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보편화했는데, 부모와 동거함으로써 직장에서 성장할 기회마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층은 고민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Z세대의 심리가 위험수위라는 분석도 있다. 젊은층(18~24세) 4명 가운데 1명은 팬데믹 때문에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조사(성인 5470명 대상·6월 24~30일)에서 드러난 결과다. 이 연령층의 25.5%가 지난 30일간 자살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조사대상 연령층에서 단연 1위였다. 25~44세는 16%로 나왔다. 45~64세는 3.8%였고, 65세 이상에선 2%만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학업을 이어 나가야 할 연령대는 감염 우려로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한 조사에선 4년제 대학 재학생의 22%가 가을학기 등록을 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미 전역에서 대학이 코로나19 발병의 핫스폿(집중발병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영향이다.

젊은층의 부모 동거 비율 상승은 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택수요를 끌어 내리고, 세입자 수의 감소로 이어져 경제 버팀목인 소비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삶’갈망하는 그들…행동하지 않는 기업 ‘不好’

사실상 갇혀 살아 고통받는 Z세대의 심리와 기업 브랜드에 미칠 영향을 자세히 알아본 결과도 있다.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가 Z세대 7000명을 조사했다.

인터넷에 익숙한 집단이지만 실제 생활에 ‘재접속’하고 싶다는 심정이 절절했다. 78%가 팬데믹 이전 친구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매우 그립다고 답했다. 휴대전화 소셜미디어로 소일하고 있지만, 사람과 뒤섞여 사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답도 71%에 달했다.

Z세대의 현실 적응력이 다른 세대보다 나은 걸로 보이는 숫자도 나왔다. 자택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조처가 끝난 뒤에도 지속할 계획인 새로운 취미와 여가생활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Z세대의 71%가 ‘그렇다’고 했다. 전체 성인이 ‘그렇다’고 한 비율(33%)보다 배 이상 많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 질문에 40%가, X세대는 34%가, 베이비부머는 2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선호하는 기업 브랜드가 이전과 달라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도 관심을 끈다. ‘처음 사본 브랜드로 좋은 경험을 해서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사겠다’는 의견이 68%였다. 브랜드 선호도가 바뀌지 않았다는 답은 36%였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브랜드나 흑인 등이 운영하는 업체가 만드는 상품을 더 많이 사겠다는 답이 Z세대에서 두드러졌다. 지역 브랜드 구입 의사를 밝힌 Z세대는 27%였다. 밀레니얼 세대와 X세대, 베이비부머가 각각 22%,21%, 15%인 것보다 많다.

흑인 소유 기업의 상품을 향한 Z세대의 선호도도 가장 높았다. 24%가 지지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17%, 베이비부머는 3%에 불과했다. 이는 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운동에 Z세대가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걸로 풀이된다.

‘미국 내 인종적 불평등 해결에 기업이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무려 72%로 나왔다. ‘기업이 정치·문화 이슈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도 66%가 찬성했다.

백인 경찰의 목에 짓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기업은 ‘말’보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비율은 83%였다. 향후 6개월간 BLM 관련 기업의 행동이 구매 결정에 중요한 요소인가‘라는 질문에 긍정 답변은 69%로 집계됐다.

성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Z세대에겐 통하지 않을 수 있단 신호도 깜빡였다. Z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50개 브랜드 가운데 25개는 성인과 일치하지 않았다. 밀레니얼 세대(13개)나 X세대(9개)보다 Z세대만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많다는 얘기다. Z세대의 최선호 브랜드엔 넷플릭스·유튜브·구글·아마존닷컴·아마존프라임·애플 아이폰·타깃 등이 포진돼 있다.

모닝컨설트는 “팬데믹도 Z세대의 기업행동주의를 멈추지 못했다”며 “3월 이후 더 많은 지역 브랜드와 흑인 및 소수인종 소유 사업체의 상품을 구매하고 팬데믹 이후에 이들 사업을 계속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 정치를 향한 Z세대의 변화 요구도 꿈틀대고 있다. 2016년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민의 안녕과 공공선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목격하면서 이대론 살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진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처에 발전이 없는 가운데 계층 간 소득 불균형 심화, 등록금 상승에 인종차별까지 난제가 얽히고설킨 탓에 11월3일 대선에서 표로써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에서 이번 대선에 투표할 자격을 갖는 Z세대는 2400만명 가량이다. 이들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답한 비율은 22%로 나왔다.

어둠의 터널 속에 웅크리고 있는 Z세대를 잡아야 경제든 정치든 힘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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