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선대 회장 밑에서 21년간 경영 수업
장인 홍진기 회장과 저녁수업서 법률·불어 공부
1972년 이병철 선대 회장(오른쪽 세 번째)이 중앙일보 윤전기를 시찰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 뒤에는 이건희 회장, 왼쪽 두 번째는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가운데는 이재용 부회장 [삼성 제공] |
[헤럴드경제 김현일 기자] 삼성의 후계자 교육 과정은 혹독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1966년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 밑에서 무려 21년 동안 경영 수업을 받은 뒤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선친은 점심시간이 되면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업무를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당시 이사)과 그의 장인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었다.
'오늘의 이건희'를 만든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도 바로 이병철 선대 회장과 홍진기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이병철 회장은 엄격한 '경영 개인교사'였다. 이건희 회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엔 회장실 바로 옆방에서 항시 대기하며 이병철 회장의 부름을 기다렸다. 수시로 회장실에 들어간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의 쏟아지는 질문을 받아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선친의 외부 일정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경영 수업을 혹독하게 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은 30대 무렵 단 한 번으로 “나를 부모로 변함없이 섬겨왔듯이 경영도 그렇게 변하지 말라”는 말이 전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이병철 회장은 자세한 설명은 아끼고, 무슨 일이든 이건희 회장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삼성 제공] |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모직, 제당, 중공업, 항공, 보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열사들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고, 사업 현황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배운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인재양성이었다. 연줄을 배제한 공정한 인사, 인재를 믿고 맡기는 '인재제일'의 철학은 이병철 회장의 유지였다. 이를 본받아 이건희 회장 역시 불합리한 차별을 타파한 인사채용 제도 및 각종 임직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 DNA'를 심어줬다면 장인 홍진기 회장은 세상을 살아가는 실용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던 선친과는 달리 홍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활발하게 소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다.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삼성 제공] |
이건희 회장은 홍 회장으로부터 매일 저녁 헌법을 비롯해 상법, 주식회사법, 관례, 역사, 프랑스어, 정치, 상식 등을 강의 받았다. 홍 회장의 저녁 수업은 18년 동안 이어졌다.
홍 회장의 해박한 식견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모든 문제를 문답식으로 풀어가며 관련 지식을 빠르게 흡수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이건희 회장은 정치, 경제, 사회의 연관관계와 그 이면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으며 훗날 반도체 신화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됐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