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IT과학칼럼]우렁각시 속 콘텐츠와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스종합| 2020-12-31 11:03

혼자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가난한 노총각이 논에서 일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농사지어 누구랑 먹고사나”하고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어디선가 “나랑 같이 먹고살지”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총각이 놀라 소리가 들려온 논두렁 쪽으로 가서 풀포기를 헤쳐 보니 커다란 우렁이 한 마리가 있어 집으로 가져왔다. 다음날 논에서 돌아온 총각이 방문을 열자 놀랍게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게 아닌가.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그랬다. 궁금했던 총각은 일하러 가는 척하고 나갔다 되돌아와 부엌 구석에 몰래 숨었다. 점심때쯤 방 안에서 어여쁜 색시가 조심조심 나오더니 금세 밥 한 상을 뚝딱 만들어 차려서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우리 전래동화 중 ‘우렁각시’의 전반부 요지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 기술 중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있다. 가상현실은 그래픽이 만든 가상환경에 사용자가 ‘입장하는’ 것이고, 증강현실은 사용자의 실제 환경에서 실감 나도록 가상의 객체를 ‘혼합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기술은 1990년 보잉사가 항공기 전선조립 과정 설명에 처음 사용한 후 꾸준한 연구로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상용화됐다. 길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을 비추면 찾으려는 장소의 위치정보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하늘을 비추면 별자리나 날씨정보를 보여준다. 또 가상 피팅거울 앞에 서기만 하면 다양한 옷을 갈아입은 듯 보여준다. 어린이용 교육자료에는 상상력 자극을 위해 이러한 기술들이 이미 펼쳐져 있다. 심지어 이 기술로 돌아가신 조상이 살아계신 듯 말하며 영상으로 만나게도 해준다. 바로 가상적 영상들과 현실공간과의 공존함이다. 앞으로 6G, 7G 통신으로 발전해 데이터 처리가 더욱 빨라지고, ‘확장현실’ 기술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면 이승 같은 현실과 저승 같은 가상이 뒤섞여 뭐가 뭔지도 모를 만큼 혼란스러운, 그러나 짜릿한 그 어떤 세상 곧 ‘그승’이 우리 앞에 전개되리라.

컴퓨터 자체가 없었던 그 옛날 늦은 밤 ‘옛날, 옛날,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하며 들었던 구수한 얘기들은 할머니의 입담으로 구현된 가상현실이었다. 현실에서 상상으로나마 어떤 욕구를 채우려 했던 우리 조상들 소망의 구현이요, 또 한국인들 정서의 유전이었다.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가 그랬고, 견우와 직녀, 선녀와 나무꾼이 그랬다. 우렁각시 속 콘텐츠는 지금껏 말하는 이의 입담과 듣는 이의 머릿속 상상으로 전개됐다. 4차 산업혁명의 별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그 동화들 속에서 ‘디지털화’를 향한 우리 미래의 꿈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기술과 인문의 융합 또한 바로 이런 것이리라. 바로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인문학을 중시해야 하고, 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깊숙이 그리고 세심히 들여다보자. 게임보다 더 격한 솔루션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의 많은 전래동화를 더는 잠자리의 단순한 얘깃거리로만 잠재워둘 수는 없다. 그 동화들을 ‘가상공간으로 현실을 투영’하거나 ‘현실공간으로 가상을 끌어’내거나 해 현실과 가상을 조화롭게 구현해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 모퉁이에 서서 우렁각시와 같은 우리의 전래동화나 설화가 머금고 있는 그 한 줄기의 빛을 찾아내보자. 특히나 코로나바이러스로 대면이 어려워진 지금의 상황에 미래를 향한 비대면 관련 디지털산업의 진정한 돌파구가 그 속,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규하 한국전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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