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부 쿠데타·시민은 극렬저항
군부대 발포·피로 물든 거리...
전투부대원 투입 ‘저격수 발포’
외신 보도 국제사회 공분 커져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7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양곤에서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위를 벌이며 저항하고 있다. [AP] |
‘군부의 쿠데타, 시민의 저항, 군부대의 무차별 발포, 피로 물든 거리....’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이 41년이 지난 현재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자각이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당시 광주의 소식은 철저히 통제돼 뒤늦게 알려졌지만, 미얀마 소식은 그나마 실시간 타전돼 국제사회가 대응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게 희망적인 면이다. 광주 때와 마찬가지로 미얀마의 시위 현장에 전투 경험이 많은 부대원들이 투입된 사실이 알려져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부가 국경지대의 오랜 전쟁과 시위대 학살 등으로 악명 높은 군부대를 거리에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민간인 사망자 여러 명이 먼 거리에서 발사된 총탄에 머리, 목 등을 맞은 점은 숙련된 저격수들의 발포로 희생됐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에 영향력이 큰 중국이 여전히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미얀마 문제에 대해 “평화와 안정이 국가 발전의 전제 조건”이라면서 “미얀마 각 측이 냉정을 유지하고 자제해야 한다”며 군부와 시위대 모두 자중하길 촉구했다.
미얀마와 광주는 규모와 정도 및 속도 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양상이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광주에서 41년 전에 일어난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그해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됐다.
미얀마에서는 지난해 11월 8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여당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석권하며 ‘문민정부’ 2기를 출범시킨 것이 역설적으로 발단이 됐다.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군부가 선거 부정을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선거 3개월여가 지난 시점인 1월 말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당시 부정행위 가능성을 제기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헌법과 현행법에 맞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며칠 뒤인 2월 1일 실제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한국에서는 1980년 5월 15일 대학생이 중심이 된 서울역 시위가 대규모로 열리자 부담을 느낀 신군부가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자 공수부대를 투입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약 열흘간 유혈진압을 실시해 수백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군부에 의해 언론이 통제돼 해외 언론이 보도하기 전까지 관련 사실이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