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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분열·갈등 씨앗...신뢰와 통합으로 민생 보듬어야” [Shape New Korea①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리더십]
뉴스종합| 2021-03-22 11:08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본부 앞에 모인 2030 청년들이 외친 구호다. 이날 ‘LH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청년들 모여라 긴급 촛불집회’라고 이름이 붙은 시위는 진보 성향 청년단체인 한국청년연대와 청년진보당 등이 주도했다. 같은날 보수성향 한국대학생포럼도 성명서를 내고 “‘누구 때문에’와 ‘남 탓’으로 시종일관 정책의 기조를 정하고 정치생명을 유지했던 현정부를 강하게 질타한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소득·자산 격차를 더 키웠고, 부동산 문제에 더해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양극화로 고통받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 강해지고 있다. 특히 ‘내 집 마련’은 커녕 취업과 결혼마저 어려워진 젊은 세대의 불만과 분노는 이미 좌우 진영 논리를 벗어난지 오래다. 이 뿐 아니다. 사회적 역차별과 성폭력에서 비롯된 남녀 갈등, 오랜 과제인 영호남 갈등을 넘어 수도권·비수도권, 서울 강남·북으로 세분화하고 있는 지역갈등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말 코로나19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직후에는 차기 대선이 치뤄진다. 이같은 대전환점이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불거진 분열·갈등 양상은, 통합과 소통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강화시키고 있다.

대선을 약 1년 앞둔 상황에서 여야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벌써 부터 정치권 안팎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리더십과 시대정신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민생안정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양측면에서의 접근보다는 민생에 집중하는 실용적인 정책과 집단지성에 귀기울이는 소통의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리더십은 사회·정치·경제에서의 공정의 룰을 재정립하고 신뢰와 통합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박병석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인 국회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김광림 전 국회의원)에 따르면 지난 2~6일 국회도서관 DB 등록 전문가 1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9%는 한국사회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았고(매우 그렇다 49.2%, 그렇다 39.8%), 80.9%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러한 갈등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매우 그렇다 34.9%, 그렇다 46%).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분기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전국, 2인 이상 농림어가)은 4.72배로 1년 전 같은 기간(4.64배)보다 0.08배포인트 상승했다. 이 지표는 가구를 개인화한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시장소득+공적이전소득-공적이전지출)을 기준으로 삼아, 5분위(상위 20%)의 처분가능소득을 1분위(하위 20%)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좌우의 거대담론으로 접근하는 사회문제 해결방안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살아남는 문제가 급선무인 ‘민생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은 여야 담론을 논할 여유도 필요성도 없기 때문에, 정치의 패러다임을 거대담론 등 이론적 영역에서 실용적·미시적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얘기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코로나19라는 초국가적 난제는 국민의 일상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가져왔다. 민생에 대해서는 점점 진영논리가 먹히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측면에서 여야가 최소한 민생에 관한 한, 의도적으로 정쟁화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가 원격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키면서 향후 정당 중심의 거대담론 자체가 점점 희미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정당 중심의 정치문화는 SNS·비대면 여론형성 창구가 활발해지면서 사그러들 가능성이 있다”며 “소그룹 중심의 여론문화가 정착되면 좌우를 넘어 소통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집단지성을 무시하고 거대담론만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상황적으로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또 LH 직원 투기 사태로 증폭된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포스트코로나 시대 정치지도자들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특히 기존 정부의 불공정성과 기득권의 불통에 대한 반발에서 세워진 문재인 정부가 ‘균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내세운 당선 공약과 정반대로 가면서 실망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언행불일치’에서 비롯된 국민의 분노가 크다. 향후 정치지도자는 정권의 기본가치를 구상할 때 그에 걸맞는 언사와 행보를 보일 수 있는지, 이전에 그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를 따져 ‘실현 가능성’과 ‘도덕성’도 고려해 중점가치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부동산 공정 문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주문했다. 그는 “LH 사태는 그간 불거지지 않았을 뿐 쉬쉬하면서 자행된 부동산 투기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라며 “구조적으로 신도시 선정으로 주변 땅주인이 큰돈을 버는 구조를 불로소득 환수 등으로 최소화하고, 공직자가 직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를 이용한 매매시 징벌적 처벌을 강화하는 등 불공정하게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투기하려는 유인 자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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