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상식의 현장에서] 국민은 ‘부동산 블루’…정부는 ‘자화자찬’
뉴스종합| 2021-08-12 12:28

# 경기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인 A씨는 요즘 불안감에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몇년 전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던 그는 당시 아파트 매수를 고민하다 집값이 급등해 결국 집을 사지 못했다. 전셋값까지 뛰어 분당으로 옮겨가야 했다. 지난해 12월 계약만기 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2년 계약이 만기되는 내년 12월에 갈 곳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갱신권은 1번만 가능해 주변 시세에 맞춰 전셋값을 2억원 이상 올려주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 예전에 집을 사지 못했다는 후회와 전셋값을 올려줘야 한다는 걱정으로 우울증까지 걸렸다.

치솟는 전셋값에 불안감이 커져 ‘부동산 블루(우울증)’를 겪는 무주택 실수요자가 많아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새 임대차법을 시행했지만 계약갱신 요구는 1회만 보장돼 신규 계약 시 폭탄 인상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작년 계약을 갱신했더라도 2년이 지난 내년엔 주변 시세에 맞춰 전셋값을 수억원씩 올려줘야 하기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 상황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가 급격하게 오른 전셋값 마련을 위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처지가 됐다”라는 40대 가장의 호소문까지 게재됐다.

급등한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하면 또다시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도권까지 전셋값이 치솟아 실수요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입자의 주거안정성이 높아졌다고 자화자찬만 늘어놓는다. 정부는 지난달 말 임대차법 시행 1년을 맞아 서울 대표 아파트 100곳의 임대차 계약 갱신(재계약) 비율이 법 시행 1년 전 평균 57.2%에서 시행 후 올해 5월 현재 77.7%로 높아졌다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아파트 임차인 다수가 제도 시행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초기에 혼선이 있었고 어느 정도 정상화돼 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갱신청구권으로 계약을 2년 연장하는 세입자가 늘면서 이들의 주거안정성이 어느 정도 개선된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갱신을 하지 못한 세입자가 겪을 부작용을 외면한 것이다. 갱신 계약 2년 후 신규 계약 시 급등한 전셋값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정부가 보고 싶은 통계만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갱신율 77.2%에는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고 임대료를 5% 이상 올린 재계약이 포함돼 있다. 갱신권 행사 비율은 만기도래 계약 중 47%에 그쳤다.

시장에선 정부가 입맛에 맞는 통계만 앞세워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임대차시장이 갈수록 혼란해져 앞으로 전세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과 실효성 없는 대책은 ‘이제 더는 정부 말은 믿지 않겠다’는 국민불신만 높일 뿐이다. 정부가 전세대책에 대해선 손을 놓았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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