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에 목매는 방송가 사람들은 사회적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의식주와 관련한 대중의 취향이나 문화 코드를 읽고 때로는 실시간으로, 때로는 반 발짝 앞서가면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한다. 요즘 방송가 사람들의 촉수가 닿은 곳이 골프인가 보다. 채널만 돌리면 ‘골프 예능’이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골프 예능 물결이 종합편성채널을 물들이더니 이제는 지상파까지 차올랐다. 그야말로 골프 예능 전성시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는 악의 상징이었다. 환경 파괴의 주범이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위화감을 조장하며, 검은돈이 오가는 로비와 접대의 대명사였다. 골프에 연루된 사람은 그가 총리든, 국회의장이든, 검찰총장이든 중간에 낙마하거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국민 예능이라는 ‘1박2일’의 주역들도 한순간에 퇴출당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공중파까지 주말 프라임 타임에 골프 예능을 편성한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골프의 극적 신분상승은 물론 코로나 사태와 무관치 않다. 코로나 갑갑증을 해소하는 데 이만한 스포츠가 없다. 그린(Green), 산소(Oxygen), 라이트(Light), 프렌드(Friend)라고 풀이하는 GOLF의 이니셜이 상징하듯, 탁 트인 공간에서 벗들과 푸른 잔디 위를 거닐며 운동과 놀이를 겸하는 종목을 찾기 어렵다. 박찬호(야구), 이동국(축구), 신진식(배구), 여홍철(체조) 등 다른 종목 선수들도 은퇴 후 하나같이 찾는 곳이 골프장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 인구는 약 515만명으로 추산됐다. 2017년 386만명보다 약 33% 넘게 증가한 수치다. 국민 10명 중 1명은 골프를 하고 있단 의미다. 정부가, 시만단체가, 주변 시선이 반사회적 운동이라며 아무리 틀어 막으려 해도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취향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골프와 오버랩되는 지점에 있는 게 다주택자다. 정부가 1가구 1주택 이외는 투기이고 반사회적 이라며 4년 내내 20여차례의 온갖 규제를 퍼부었지만 역대급 집값 상승이라는 역효과만 나왔다. 집값 불안은 공급이 달려서가 아니라 다주택 투기꾼의 농간이 근본 원인이라며 번짓수를 잘못 짚은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1가구 1주택’은 사실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모두가 1가구 1주택이라면 이사를 가고 싶어도 제때 갈 수 없다. 내가 원하는 집과 상대방이 내 집을 원하는 것이 양방향으로 일치해야 하는 데 이럴 확률은 극히 낮다. 이같은 수요-공급의 미스매치가 일상화되면 헌법적 가치인 거주·이전의 자유가 훼손된다. 국민적 봉기를 부를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주택자와 임대시장이 필요한 이유다.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편리한 곳에 살면서 집값 상승에 따른 자산증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런 욕망이다. 도시생활의 갑갑함을 딜래줄 지방의 세컨하우스를 갖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다. 골프든 부동산이든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 흘러갈 물꼬를 터주되 타락과 폭주는 경계하는 균형잡힌 시각과 정책 운영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