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팀장시각] 엘리트 판사
뉴스종합| 2021-11-11 11:48

‘좋은 재판은 내가 이기는 재판’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재판은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대립하는 분쟁해결 과정이고, 어느 한쪽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못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좋은 재판은 당사자가 승복하는 재판일 것이다. 당사자가 승복하려면 기본적으로 양쪽 주장을 잘 듣고 타당한 근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에 맞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말이 쉽지, 대단히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고 유능한 법률가가 맡는다. 한 번의 재판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능력 있는 인재를 고르고 골라도 크고 작은 오판이 나온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앤장 판사 독식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신규 판사 선발을 필기시험 성적 중심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사회제세력이 주도하는 법관선발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이 원하는 인재들이 판사로 임용될 길을 열겠다”고 했다. 소위 사회 ‘엘리트’들이 판사직을 독점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하지 않자 “법 기술자적 판단을 했다”거나 “공직자 먹튀를 조장한다”고 맹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퇴직한 공직자를 파면 대상으로 삼는 게 오히려 기교적인 사법이고, 이 자체가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되레 최소한의 ‘법기술’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법대에 앉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게 법관 선발 시스템이다.

현재 판사 선발은 법조 경력자를 대상으로 1차 필기, 2차 구술시험을 통해 이뤄진다. 1차 필기시험은 대부분의 지원자가 답할 수 있는 내용으로,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위한 예선에 가깝다. 본선은 구술시험이다. 사례를 주고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면서 법률가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 평가한다. ‘필기시험 위주 선발’이라는 이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대형 로펌 경력이 있는 사람이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건 결과론적인 얘기다.

거꾸로 물어보자. ‘사회제세력이 주도하는 시민이 원하는 인재’는 과연 어떤 모습의 판사인가. 객관화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지원자가 좋은 판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그 판단을 하는 권력은 어떻게 통제하면 될까. 과연 능력 위주의 선발은 부당한 것인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는 다양화 요구를 할 수 있다. 최고법원은 정책법원으로, 개별 사건을 처리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년의 법조 경력을 통해 기본 자질이 검증된 인사가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된다. 하지만 일선 법원 판사는 다르다. 대법원이 치료방법을 연구하는 대학병원이라면, 1·2심 법원은 응급실이나 다름없다. 중상을 입은 응급환자는 어떤 의사를 찾아야 할까. 당연히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적임자일 것이다. 병상에 누워 ‘나는 의료기술자 필요 없으니 착한 의사를 불러오라’고 할 환자는 없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능한 의사라고 악하지 않고, 무능한 의사가 선한 것도 아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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