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리더스칼럼] ‘배추김치’가 없는 김치게임
뉴스종합| 2021-11-15 11:42

세계김치연구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김치 중에서 배추김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추김치는 어떻게 김치를 대표하게 되었을까? 수천년간 이어진 김치의 계통을 살펴보면, ‘젓갈의 감칠맛 발견’, ‘향신양념의 조화로운 결합’, ‘배추의 육종 기술’이 종합적으로 더해지고, 배춧잎 사이사이에 혼합 양념을 넣는 제조법이 두루 통용되면서 배추김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가 됐다. 추운 겨우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여럿이 함께 모여 만들었던 김장김치도 배추김치 위주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은 김치하면 주로 배추김치만 떠올리지만, 김치의 종류는 생각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치의 효능으로 정장작용, 면역 강화 등이 있는데, 이는 김치를 발효시키는 유산균에 의한 것이다. 김치 유산균은 배추김치뿐만 아니라, 갓김치, 파김치, 동치미 등 각종 김치에서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존재하고, 이 김치 유산균들의 발효 대사산물로써 다양한 기능성 물질들이 생산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김치를 널리 알리고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배추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제는 세계인 모두가 즐기는 건강식품이 된 김치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다양한 김치를 찾기 위한 노력은 지역 김치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김치는 지역마다, 계절마다, 또 특별한 의미를 담아 각양각색의 맛과 멋이 담긴 수백여 가지 종류로 변신한다. 김치문화는 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 한반도에서 특정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이 김치 문화권은 초기에 지형과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간적 변동이 일어났다. 큰 산맥으로 연결된 산줄기는 지역 김치문화의 이동을 막는 지형지물이면서 경계가 되었고, 산과 산 사이에 흐르는 물줄기는 김치 재료 및 상품을 사고, 팔고, 만드는 사람의 이동을 도와주는 교통로 역할을 해왔다. 또한 김치 제조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승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김치에는 유기체적인 문화 전파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최근 각 시도 및 지자체에서는 앞다퉈 지역 내 김치산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지역의 김치가 지닌 물질적·문화적 속성을 찾고, 지역 특성이 담긴 김치의 표준 조리법과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김치를 개발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의 갓김치, 경기 이천시의 게걸무김치, 경남 창원시의 단감김치 등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특화 별미김치들이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역 김치는 해당 지역의 주요 산물이 기본이 되겠지만, 그 지역의 독특한 양념 배합이나 비법을 찾는 것까지 수반돼야 경쟁력 있는 김치를 완성할 수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유행한 ‘김치 게임’이라는 놀이에서는 김치의 다양함의 토대가 되는 가변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채소 이름을 아무거나 말하고 해당 채소로 만든 김치가 검색되면 벌칙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김치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다면 ‘배추김치’를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게임 중에는 김치로 만들지 못하는 채소를 찾는 데 집중하지만, 끝나고 나면 콜라비김치, 아스파라거스김치 등 채소로 못 만드는 김치가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제 국내산 채소뿐만 아니라 외국산 채소, 과일, 허브까지 김치로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김치와 김치문화가 진정한 유기체로서 경계를 넘어 세계로 나가기를 희망한다.

이창현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진흥연구단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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