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흔들리는 ‘자유의 나라’…美엔 왜 ‘금서 바람’ 다시 부나
뉴스종합| 2022-01-18 11:21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자유의 나라’임을 자처하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미 전역의 일부 주(州)·카운티 교육 당국들이 성소수자(LGBTQ) 문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도서와 교육 자료에 대한 ‘금서(禁書)’ 목록을 지정, 퇴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 단체들이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고, 보수 성향 단체들이 교육 당국의 조치에 대한 엄호에 나서며 ‘보혁 갈등’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17일(현지시간)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도서관협회(ALA)는 이날 지난해 9~11월 석달간 접수된 도서·교육 자료에 대한 금서 지정 요청 건수가 330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1년간 273권의 도서, 156개 교육 자료에 대해 금서 지정 요청이 접수됐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1년 전체 금서 지정 요청 건수 집계가 완료된다면 이례적으로 신청 건수가 많았던 지난 2019년(도서 566권, 교육 자료 377개)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데보라 콜드웰-스톤 ALA 지적자유실(Office for Intellectual Freedom) 실장은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관련 업무를 20년간 해왔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미 전역의 교육 현장에선 실제로 성소수자, 인종차별, 페미니즘 등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 책과 교육 자료들이 퇴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접한 청소년들이 성장·발달 과정에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들의 주장이 속속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미국도서관협회(ALA)에 금서 지정 요청 건수가 가장 많았던 책 상위 10권 중 4권의 모습. [악시오스]

버지니아주(州) 스포실바니아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공립학교 도서관에서 성소수자(LGBTQ) 문제를 다룬 도서들을 ‘성적으로 노골적인 도서’라 규정, 도서 목록에서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카운티 교육위원회 소속 라비 아부스마일 교무위원은 관련 회의에서 “이 책들을 불속에 던져 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같은 시기 캔자스주 고다드 교육구는 공립학교 도서관에서 책 29권을 치우라 명령했다. 이 목록 속에는 영국 부커상 수상 경력의 캐나다 출신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가 여성 권리 문제에 대해 다룬 ‘시녀이야기’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이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서술한 ‘가장 푸른 눈’이 포함됐다. 이 밖에도 유타주 워싱턴 카운티 교육 당국은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책을 퇴출했고, 텍사스주에선 법무장관 후보로 나섰던 맷 크라우스가 850권의 책 제목이 담긴 금서 목록을 교육 당국에 제시하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진보 성향 학부모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 33개주에 7만명의 회원이 있는 진보 성향 단체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 은 각주 교육 당국의 금서 지정 확산 움직임에 대항해 소셜미디어(SNS) 상에 ‘#자유(Freedom)’란 해시태그를 다는 캠페인으로 맞서고 있다.

티파니 저스티스 자유를 위한 엄마들 공동 설립자는 “아이들에게 특정 주제를 읽지 말 것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경계를 넘나들며 책을 읽어야 다양한 관점에 대한 주체적 사고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모습이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정치적 분열의 축소판이라고 분석했다.

존 잭슨 펜실베이니아대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대학 학장은 “현대 정치 담론을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분열상이 교육 현장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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