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선거의 투표율은 ‘혐오와 공포의 함수’가 되지 않을까.
여야 막론하고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이 극대화돼 정치 혐오가 더 커지면 투표율은 낮아질 것이고 “○○○ 후보가 되면 나라 망한다”는 공포심리가 혐오를 압도하면 오히려 각 지지층이 결집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즉,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도 대선과 정치에 대한 혐오가 더 압도적일 경우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들이 많을 수 있다. 누구를 뽑아도 겨가 묻거나 똥이 묻거나 뭐 달라질 게 있겠느냐, 이런 체념적 정서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들의 발길을 막을 것이다.
만연한 혐오에도 특정 후보에 대해 ‘그가 되는 것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는 경계심리가 더 커진다면 다수의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할 수 있다.
어느 경우나 대한민국의 정치로서는 ‘최악’임이 틀림없는데 대선을 채 50일도 남겨 놓지 않은 정국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슬픈 예감’ 쪽으로 기운다. 한 후보의 배우자는 허위 경력 등 범법 의혹을 받은 데 이어 공사(公私)를 넘나들며 기자와 나눈 ‘위험한 발언’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다른 후보는 과거의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내뱉었던 과거의 ‘욕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력한 여야 후보를 가진 양당에서 서로 ‘조폭’과 ‘무당’까지 언급하며 ‘막장 드라마’로 향하는 선거를 더욱 혼탁하게 하고 있다. 공사를 구분하고 시시비비는 가려야 할 문제이지만 어쨌든 어린 자녀와 청소년에게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라고 보여줄 수는 없는, ‘18금’ 선거가 돼 버렸다. 이토록 아이들과 뉴스 보기가 두려운 선거가 그 어느 때 있었나 싶다.
이번 대선이 과거 선거의 ‘평균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러 ‘특이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시작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둘러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둘러싼 ‘고발 사주 의혹’이었다. 두 후보 공히 가족과 사생활, 공직활동 모두에 걸쳐 받고 있는 의혹은 대선후보로선 전례 없는 것이다.
이 혼돈의 선거판이 더 나아질 것 같진 않다. 상대의 허물에 대해선 그것이 내밀한 사적 영역이든 검증받아야 할 공적 활동이든, 사실이든 유언비어든 일단 ‘꺼내놓고 보자’는 여야 각 정당의 행태가 당장 바뀔 것 같진 않다. 대중의 선정적 관심을 먹이 삼아 조회 수와 슈퍼챗 사냥에 열 올리는 유튜브 채널도 비관과 회의를 더한다.
그렇다면 혐오와 공포로부터 대선을 구해낼 방법은 없을까. 아마도 유일한 구원자는 유권자 자신 뿐이다. 유권자 스스로가 각 후보를 조롱과 희화화, 과거와 사적 언어의 오염으로부터 구해내, 그들의 ‘공적 언어’와 ‘공적 행위’와 ‘국가 비전’을 심판의 도마 위로 복원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을 듯하다.
과거가 미래를 삼키고, 사적 언어가 공적 영역의 피를 빨아먹는 대선이 되고 있다. 어느 정치세력이 사적 언어와 관계로 공적 영역을 오염시키고, 미래의 비전 대신 과거로의 퇴행을 강요하는지 유권자들의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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