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절망·불안…우정·사랑의 고민·아픔
순수한 멜로의 원형질 보유
로맨스도 잘하지만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성으로 극을 이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나는 배우 손예진(40)을 2001년 드라마 데뷔작인 MBC ‘맛있는 청혼’을 앞두고 신문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청순한 외모의 슈퍼 루키였다. 여기서 슈퍼루키라 함은 당시 배우 코스였던 단역-조연-주조연-주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연공으로 발탁돼 붙여진 별칭이다.
그로부터 20여년간 쉬지 않고 일하는 배우 손예진을 지켜봤다. 그에게는 순수한 멜로의 원형질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오글거리는 대사나 상황도 손예진이 하면 자연스럽게 된다. 손예진의 웃음과 눈물 연기는 멜로 최고의 무기다.
영화 ‘클래식’(2003)과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 드라마 ‘여름향기’(2003), ‘연예시대’(2006) 등에서는 리즈 시절의 청순미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멜로퀸의 자리를 차지했다. 비교적 최근의 멜로물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와 ‘사랑의 불시착’(2019)에서도 손예진의 멜로 연기의 매력은 여전했다.
멜로 뿐만 아니라 액션 어드벤처물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과 범죄오락 영화 ‘협상’, 사회성 짙은 드라마 ‘상어’ 등에도 출연하며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 장르물에도 어울리는 배우가 됐다. 멜로가 주전공이며, 부전공으로 장르적 성격이 있는 작품을 선택해 연기 영역을 확대한 셈이다.
연기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의리도 있다. 그 흔한 논란, 스캔들도 거의 없었다. 19살에 만난 소속사 사장(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김민숙 대표)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민숙 대표는 “(손예진이) 여고 3학년때인 19살에 만나 이제 결혼을 한다. 의리가 좋다. 고맙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미용실도 20여년간 청담동의 한 곳을 이용한다고 한다. 손예진과 인터뷰를 해보면 겸손함과 배려심에 기분이 좋아진다. 미인을 만난 것만 해도 좋은데, 상대를 기분좋게 해주니 더할 나위 없다.
손예진은 요즘 방송되고 있는 휴먼 로맨스물인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속에서는 멜로퀸, 로코의 여왕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성을 보여주며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손예진은 이번 ‘서른, 아홉’에서 차미조로 분해 더욱 깊어진 내공으로 삶과 죽음, 사랑과 우정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흔들리는 연기를 리얼하게 담아내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눈물과 웃음, 감동과 씁쓸함까지 한 회 안에 다양한 진폭의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는 ‘서른,아홉’은 손예진의 디테일한 감정 연기가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죽음을 앞 둔 친구 찬영(전미도)으로 인한 슬픔, 절망, 불안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손예진은 뜨겁게 감정을 폭발하며 오열하는가 하면, 깊은 슬픔을 가슴 속 깊숙히 삼키며 눈빛과 숨소리만으로 ‘차미조’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세 친구의 우정이 부럽기만 하다.
손예진이 보여준 눈물의 의미도 모두 다르다. ‘눈물연기’ 하나에도 섬세하게 대사의 톤과 표정, 눈빛을 섬세하게 변주하며 ‘차미조’의 감정에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한다.
유부남인 상태로 친구 찬영을 만나는 진석(이무생)의 멱살을 부여 잡고 터져나오는 원망과 자책의 눈물, 진석의 아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가픈 호흡과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보여준 매마른 눈물, 술에 취한 모습으로 찬영을 찾아와 불안한 속내를 감추고 투정처럼 뱉어내는 눈물, 친모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김선우(연우진)가 자신을 ‘고아 출신’이라 주저한다는 오해 속에 친모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그에게 그동안 감춰져 있던 ‘상처’를 드러내던 애처로운 눈물, 교도소에 있는 친모를 면회한 후 자신을 기다리던 친구들과 선우를 보자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눈물까지.
그러면서 손예진은 ‘캐미 장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손예진은 전미도, 김지현 배우와 첫 호흡인 것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찐친 캐미를 보여주고 있다. 10대부터 이어진 세사람의 우정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세 사람의 티키타카는 누구나 겪었을 친구들과의 추억을 소환하게 만들며 공감과 힐링을 선사한다.
‘작약커플’로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김선우(연우진)와의 멜로 캐미는 ‘멜로퀸’ 손예진의 위엄을 여실히 보여준다. 완벽한 멜로 캐미로 뒤늦게 찾아온 사랑 앞에 주저하고, 설레이고, 조심스러운 어른들의 멜로에 흐믓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또한 웃음 바이러스 역할을 톡톡히 하는 언니 차미현역의 강말금과의 ‘자매 캐미’도 좋다. 두 사람이 병원 안에서 벌이는 티키타카 대화는 찰진 호흡으로 웃음을 터지게 만든다.
섬세한 연기 디테일과 희로애락의 감정변화를 노련하게 변주하는 연기 내공, 목소리만으로 서사를 만드는 명품 나레이션까지 ‘서른, 아홉’을 통해 손예진은 다재다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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