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압력, 기업들 무겁게 반응
투자자에 평가기회·근거 제공해야
‘글로벌 세그먼트’ 조성 혜택 부여
옥석구분 한국판 나스닥 만들것
제도 정비땐 가상자산거래도 도전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부 기업들의 물적분할과 스톡옵션 먹튀 논란 등에 대해 “몽둥이로만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시장 신뢰와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섭 기자 |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초저금리로 모처럼 달아올랐던 대한민국 증시가 다시 싸늘해지고 있다. 인플레와 긴축, 전쟁 등 외부요인 탓도 크지만 우리 증시에 내재한 문제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증시 플랫폼을 책임지고 있는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만나 해결책을 들어봤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손 이사장은 금융 정책과 제도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물적 분할부터, 상장 후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대규모 횡령까지 논란·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해 부정행위 척결에 앞장서겠다.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본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치유해야 한다. 다만 법령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거래소에서 하는 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기업들이 사회적 비난 압력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거래소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에 소액주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하게 하고 투자자들이 이를 평가하게 하면 기업들이 실질적 압력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시장 신뢰와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 몽둥이로만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지적하는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지배구조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다는 지배구조를 맨 앞에 둔 ‘GSE’가 더 절실한 게 아닌가. 기업들의 의사 결정을 보면 일반주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과거 장하성·김상조 교수 등이 ‘소액주주 운동’ 할 때를 떠올려보면 ‘천지개벽’한 정도로 바뀌기는 했다. 그래도 원조격인 영미권과 비교해 주주자본주의가 덜 발달한 것은 맞다. 주주자본주의와 신뢰를 정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해 주식 시장이 좋을 때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맹점들이 많이 드러났다. 이런 것들 고치는 것도 (거래소가) 할 일이다. 기업들이 지배구조보고서 등을 공시하도록 했는데 이를 잘 다듬어 가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단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이 예전에 그렇게 반대하던 주주총회 전자투표제가 코로나19 덕분에 보편화됐다. 제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거래소 등 증시 인프라 기관들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보고 의무화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이 알기 쉽게 번역해주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KRX ESG포털’의 주요 작업 중에 하나가 기업지배보고서 내용을 요약해서 올리는 일이다. 투자자들이 관심 가질 항목을 요약해서 서비스한다. 모양만 갖췄는데 차근차근 내용을 충실히 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대선에서 MSCI 선진지수 편입 문제가 부각됐었다. 해묵은 과제인데 이번에는 될 수 있을까.
▶역외 선물환 시장을 만들고, 외국인투자자 등록제를 손 보는 등의 몇몇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는 투기적 외국 자본에 나라를 흔들리게 할 것이냐는 불안이 있다. 그 동안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강조해왔지만 그런 생각만 하면 신흥국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글로벌 기준에) 의연해져야 선진국 대접 받고 그에 걸맞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그간 두려워하던 당국이 해보겠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준비하고 있다. 좋은 출발로 보여진다.
-코스닥 상장사들 자꾸 덩치 커지면 코스피로 가려고 한다. 알짜 기업들이 계속 빠지니 코스닥은 늘 ‘마이너리그’다.
▶대책은 이미 만들었다. 가칭 ‘글로벌 세그먼트’다. 일단 이 범주에 들어가면 굳이 코스피로 가지 않아도 자존감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계획이다. 혜택도 있다. 미국도 ‘핫(hot)’ 한 기업은 나스닥에 다 있다. 그런 시장처럼 만들겠다. 스타플레이어를 잡아 두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 좀 바뀌지 않을까 싶다. 나스닥도 처음부터 잘나가는 시장은 아니었다. 닷컴버블 이후에 옥석이 구분되며 살아남은 기업들이 대표 선수로 자리잡았다. 겨울 전에 출범을 시킬 생각이다.
-전세계 자금이 미국 증시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국내에도 미국을 더 유망하게 보는 시각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기본에 충실한 선택일 수 있다. 우리 시장이 미국 만한 밸류에이션과 수익성을 준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우리 시장을 키우고 대체적인 투자상품을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ETF(상장지수펀드) 투자 붐으로 국내 ETF에 대한 투자자 관심도 높다. 국내에도 해외지수 추종하는 ETF 상품 많다. 해외투자 수요를 충족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아직 우리 시장에서 ETF 비중이 선진국 대비 크게 낮지만 요즘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 ETF는 적극적 초과수익 보다는 수동적 시장수익을 추구하는 게 본질이다. 최근 나오는 상품들을 보면 정통형 보다 테마나 액티브가 더 많다. 본질에서 벗어난 듯 하다.
▶그래서 심사를 까다롭게 하려고 했더니 운용사들이 난리다. 지금 아니면 안된다고 너도나도 출시하며 지형 변화가 크다. ETF는 지수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액티브 등이 더 주목을 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맞다. 정통 패시브 보다 테마형이나 액티브가 투자자 입맛에 더 맞아서 그런 듯하다. 성장과 발전과정으로 보고 문제는 시정하되, 처음부터 너무 억제해 업계나 투자자 수요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당장에는 인버스나 일명 ‘곱버스’(인버스 레버리지)로의 쏠림을 제어하는 게 거래소가 할 일이다.
-가상자산 시장이 이제 점차 금융시스템과 겹쳐지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진출할 생각이 있는가?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상자산 중에 증권형의 성격을 가진 것들은 자본시장법에 포섭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하고 싶지만, 교통정리 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갈 수는 없지 않겠나.
-가상자산 외에 앞으로 또 거래소가 진출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탄소배출권 같은 것은 잘 해야 한다. 지금은 실수요 기업들이 주로 배출권을 사고파는데, 결국은 이게 금융투자 수단이 되어야 시장이 발전된다. 증권사들을 참여시키는 게 첫 단계로 보여진다. 개인들도 증권사를 통해 배출권을 사고파는 시대가 1년 내로 올 거 같다. 시장이 더 넓어지고 깊어질 것 같다.
정리=양대근·박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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