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보내라” “말라”…獨·캐나다·우크라, ‘러시아 가스터빈’ 3각 외교전(戰)
뉴스종합| 2022-07-08 14:01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 스트림1' 가스관의 모습이다. [로이터]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러시아 소유로 캐나다에 묶여있는 독일산 ‘가스관 터빈’을 둘러싸고 독일, 캐나다, 우크라이나 간에 치열한 외교전(戰)이 펼쳐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달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1’ 부품인 가스관 터빈을 러시아에 돌려 보내지 말라고 캐다다 정부에 로비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은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이 캐다나 정부에 해당 가스관 터빈을 러시아에 보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보내지 말라”, 독일은 “보내 달라”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캐나다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터빈이 뭐라고?
러시아 국영가스 기업 가스프롬의 수장 알렉세이 밀러. [타스]

논란이 된 터빈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연결된 러시아 가스관 '노트르스트림1'에 쓰이는 가스송출설비다. 독일 지멘스(Siemens) 제품이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소유다. 그런데 이 부품은 고장이 나 지멘스에너지가 캐나다 정비 공장에 맡겼다. 수리를 다 끝낸 부품은 정상 상황이라면 소유주인 가스프롬에 돌려 보내져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캐나다 당국은 러시아 제재를 이유로 부품을 돌려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가스프롬은 ‘천연가스’를 볼모로 잡았다. 가스프롬은 지난달 14일 독일로 가는 가스 수송량을 40% 줄여버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에 있는 지멘스 터빈엔진 3대가 가동되고 있는데, 이 역시 축소할 것”이라고 하더니 이튿날에는 60%를 줄였다.

이후 지멘스도 가스프롬의 부품 정비와 관련한 내용을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가스프롬의 가스 공급 축소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발끈했다. 그 전부터 러시아는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긴 했다.

독일, 급했나?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 [AFP]

가스프롬은 정비를 이유로 오는 11일부터 21일까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독일에선 러시아 가스가 아예 끊기는 것이다.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30~40% 정도다.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벡 장관은 해당 터빈이 유지보수 기간 전에 반환되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푸틴이 가스관을 잠그는 핑계가 제거된다는 거다.

하벡 장관은 6일 블룸버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누구보다 더 앞 장 서서 EU 제재안 강화를 위해 싸우겠지만, 강한 제재는 러시아와 푸틴에게 해를 입히고 다치게 해야하는 것이지 우리 경제에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으로부터 터빈 변명을 없애야한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의 모습. 파란색이 독일로 가는 '노르트스트림1'이다. [ml750 유튜브채널]

그는 "가스 저장고를 채우려면 '노르트스트림1'의 용량이 필요하다"며 "독일 가스 저장고를 채우는 문제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시장, 유럽의 가스 공급 안보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노트르스트림1을 통해 러시아 가스를 받지 못하면, EU가 연말까지 지역 내 가스 저장고 최대 용량의 90%를 채우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발언이다.

독일 경제가 긴급한 상황이긴 하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 5월 통일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러시아 가스를 수입하는 독일 최대 에너지 업체 유니퍼는 하루 3000만 유로(약 399억원)씩 손실을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왜 '히스테릭' ?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 지사 입구 모습이다. [AFP]

우크라이나는 가스 부품은 대(對) 러시아 제재 대상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로비 활동도 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가스와 관련한 어떤 장비도 대러시아 제재에 따라 금지된다"며 "장비 전달(반환)이 승인되면 우리는 유럽 동료(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그런 접근법을 재평가하라고 반드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자신들이 합의한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연대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캐나다 천연자원부 장관에 서한을 보내 "가스프롬의 독점 행위와 협박에 대응하는 능력을 유지하려면 함께 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대를 촉구했다.

2쪽 분량의 이 서한에는 러시아가 해당 부품이 없어도 가스 압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있다는 설명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캐나다의 선택은?

캐나다는 독일이 제재 해제를 공식 요청해옴에 따라 터빈을 러시아로 반환할 지 말지 최종 결정 내려야한다.

캐나다 정부는 아직 가스관 터빈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독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만큼 독일과 캐나다 양국 관계만 살피면 문제는 간단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껴 들면서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캐나다에 사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들도 가스관 터빈 전달을 막기 위해 캐나다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을 제외하면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가 가장 많이 사는 국가다.

이민자 단체인 '우크라이나계 캐나다 회의'(UCC)는 터빈 반환이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국가들을 갈라 칠 음모라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라 치치 UCC 전국 회장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면제한다면 러시아의 협박과 에너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이며, 오로지 테러국가 러시아의 배짱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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