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예쁜 내 금발 공주님”…‘딸바보’ 국왕 눈에선 꿀이 뚝뚝[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디에고 벨라스케스 편]
라이프| 2023-02-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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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편〉 연재글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이번 편 벨라스케스와 모라의 대화 장면 등에는 기자의 상상력이 더해졌음을 밝힙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일부 확대)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바스찬 데 모라의 초상화(일부)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이 사람아. 일부러 웃긴 표정 짓지 말라니까?"

"어색해서 그럽죠." 1644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소인(小人) 세바스찬 데 모라를 다그쳤다. 왕실 1등 화가가 내 단독 초상화를 그려? 대체 왜?…. 모라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날 봐. 자연스럽게 있으라고." "광대탈이라도 쓰면 안 될깝쇼?" "그런 건 왕이 계실 때나 해." 모라가 웅얼대자 벨라스케스가 재차 소리쳤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1656년경 [빈미술사박물관]

며칠 전 일이었다.

고귀하신 왕족의 갓난 아기님이 왕실 접시를 깨뜨렸다. 앙 하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자식아! 넌 뭐했어?" 아기님의 고사리손에 맞고 꼬집히던 모라가 끌려갔다. 대신 몽둥이를 맞았다. 모라는 이런 일이 익숙했다. 궁에서 사는 소인은 그런 존재였다. 장난감이었다. 왕족을 돋보이게 하는 애완동물 정도였다. 어린 왕족이 잘못하면 몽둥이도 대신 감당했다. 모라는 궁정 복도를 엉거주춤하게 걸었다. 후드려 맞은 엉덩이가 여전히 뜨거웠다. 모라는 억지로 웃었다. 짓궂은 귀족 몇몇이 자신을 발로 뻥뻥 찼다. 우스꽝스럽게 엎어졌다. 이때 벨라스케스가 다가왔다. "이봐, 모라." 낮은 톤의 귓속말이었다. "네. 나리." "할 이야기가 있어. 내 작업실로 와."

"저를요…? 왜요?"

모라는 흠칫 놀랐다. "싫어?" 벨라스케스는 무미건조하게 응수했다. 하여튼 특이했다. 모라는 그간 이 남자를 눈여겨 지켜봤다. 남들에게 짓는 표정, 내뱉는 말만 보면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만날 툴툴댔다. 툭하면 짜증 냈다. 그러나 이 자는 국왕 펠리페 4세에게 인정받은 최고 화가였다. 그런 만큼 신경질적인 면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깍쟁이인 듯하다가도 무언가 남달랐다. 이 까칠한 남자는 모라를 볼 때 늘 그의 눈을 응시했다. 다른 이들처럼 짧은 다리를 보지 않았다. 이 까다로운 사내는 여타 궁정 화가처럼 모라를 웃기게 그리지 않았다. 항상 영혼을 담았다. 다른 그림쟁이 놈들? 그 자식들은 늘 왕족을 더 멋있게 그렸다. 그만큼 모라는 더 못나게 그렸다.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따위 '몰아주기' 방식으로 왕족의 환심을 사곤 했다.

호세 마누엘 발레스터, The Royal Palace, 2009

"싫은 건 아닌뎁쇼."

"그러면 됐어." 모라는 벨라스케스에게 내심 고마움을 품고 있었다.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이었다. "광대탈? 거지 분장? 뭘 갖고 오면…" "그냥 와." 벨라스케스가 말을 잘랐다. 약속의 날은 금방 왔다. 벨라스케스는 모라에게 붉은색 겉옷을 안겨줬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이었다. 멋스러웠다. 솜털처럼 폭신했다. "나리. 제가 이걸 어떻게 입어요. 큰일납니다요." 모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얼른 걸쳐봐. 저기에 앉으면 돼." 벨라스케스에게는 역시 먹히지도 않는 말이었다.

"…모라, 평소에 무슨 생각해?"

"에?" "광대탈 타령은 그만하고. 이런 데 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말이야." 캔버스를 앞에 둔 벨라스케스는 쉴 틈 없이 붓을 놀렸다. 모라는 입술을 오므렸다가 폈다. 생각? 그런 거야 많았다. 먼저 자기 삶이 불쌍했다. 소인은 택한 생이 아니었다. 미천한 신분 또한 원한 게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궁정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런 자기 따위나 발로 차며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끝으로 이 나라가 불쌍했다. 아직 위세를 떨친다지만, 이런 자식들이 통치한다면야 끝은 뻔했다. "저는 말입죠." "말은 안 해도 돼. 생각만 해." 벨라스케스가 말을 또 잘랐다. 그런 그는, 고개를 쭉 내밀곤 모라의 두 눈을 다시 봤다. 모라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시간이 흘렀다.

모라는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분, 몇 시간, 어쩌면 며칠이 지난 듯도 했다. 모델 일은 막 끝났다.

벨라스케스가 손짓했다.

이리 와서 보라는 건가…? 모라는 슬금슬금 다가갔다. 벨라스케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을 봤다. 모라였다. 지금 여기에 모라가 있지만, 그곳에도 모라가 있었다. 자신을, 타인을, 나라를 불쌍해하는 모라였다. 모라는 감정에 북받쳤다.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는 토해내듯 말했다. "이건, 진짜 저네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바스찬 데 모라의 초상화
시골 귀족이었지만 ‘인싸’ 스승 덕에
디에고 벨라스케스, The Three Musicians

벨라스케스는 1599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육 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 후앙 로드리게스 데 실바는 포르투갈계 유대인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진짜 귀족에 끼지 못하는 시골 귀족(Hidalgo·이달고) 출신의 예로니마 벨라스케스였다. 아들 벨라스케스도 당연히 이달고였다. 그는 이런 배경 탓에 진짜 귀족으로의 승급(昇給)을 평생 갈망한다. 이런 배경 덕에 차별받는 약자들을 편견 없이 볼 수 있게 된다.

벨라스케스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부모가 교육열이 있었다. 언어, 철학, 종교 등을 두루 배웠다. 벨라스케스는 웬만큼은 다 잘했다. 이 중 일품이 그림이었다. 부모가 꼬맹이의 연습장을 펼쳤을 때, 여린 손으로 그린 낙서에는 감동이 있었다. 부모는 뜻을 모았다. 벨라스케스에게 미술 교사를 붙여줬다. 12살 때였다. 벨라스케스는 세비야 출신의 프란시스코 파체코에게 5년간 배웠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Tavern Scene with Two Men and a Girl

스승을 잘 골랐다.

이자에게 특별한 걸 배우지 않았지만 그랬다. 사실 파체코가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노력파에 가까웠다. 그런 그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따로 있었다. 사교성이었다. 파체코는 타고난 마당발이었다. 귀족, 화가, 지식인 등 모르는 이가 없었다. 파체코는 무엇이든 곧잘 해내는 벨라스케스가 예뻤다. 얘는 뭔가 되겠다 싶었다. 파체코는 자기 인맥을 제자와 공유했다. 보통 신분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도 많았다. 벨라스케스는 그런 사람들과 만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물론, 르네상스 사상과 처세술도 익힐 수 있었다.

파체코는 한술 더 떴다.

벨라스케스는 파체코의 딸 후안나 파체코와 결혼했다. 18살 때였다. 파체코가 하다 하다 자기 딸까지 소개해준 것이다. "5년간 교육과 훈련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재능, 미덕, 성실함에 반해 내 딸과 인연을 맺도록 했다." 훗날 파체코는 이렇게 회고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파체코의 말이 맞았다.

그쯤 벨라스케스는 유망주 위치에서 벗어났다. 재능도, 미덕도, 성실함도 갖춘 의젓한 화가였다. 실력은 이미 파체코를 넘었다. 성격이 막 살갑지는 않았다. 최소한 모든 이를 똑같이 대했다. 격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편견도, 선입견도 없었다. 야망, 이를 뒷받침할 지구력만큼은 옆 사람조차 두려움을 느낄 만큼 마구 샘솟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을 부치는 노파

벨라스케스의 대표 초기작은 '계란을 부치는 노파'다.

19살 작품이다. '보데곤'(bodegón)이라고 하는 스페인 특유의 장르화다. 이 단어의 어원은 선술집이다. 음식, 그릇 등을 통해 서민 일상을 표현하는 풍속화다. 노파가 좁은 주방에 앉아있다. 옷차림을 보니 신분도 높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부치는 계란마저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 노파의 눈빛은 강렬하다. 주름 하나, 핏줄 한 줄에도 위엄이 느껴진다. 멜론과 포도주병을 든 소년의 얼굴에도 생명력이 가득하다. 벨라스케스는 서민을 조롱거리로 삼지 않았다. 더 웃기게 그리지도, 억지로 불쌍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다른 장르 화가들과의 차이점이었다.

주방은 벽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

그럼에도 질그릇과 도자기, 바구니, 금속 절구 등은 생생하게 보인다. 벨라스케스가 벌써 카라바조 풍의 테네브리즘(Tenebrism·명암 대비 화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음을 뜻한다.

“내 초상화는 오직 그대만” 궁정화가 꿈 이루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실 잣는 여인들

"이제 더 큰 도시로 가보자고. 이를테면…. 젊은 왕이 있고, 늙은 귀족들이 득실대는 곳 말이야."

벨라스케스는 스승 파체코가 어디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마드리드였다. 1622년, 벨라스케스는 그 기회의 땅을 밟았다. 23살 때였다. 이미 그의 명성은 이곳까지 닿았다. 특히 초상화를 기막히게 그린다는 말이 퍼졌다. 벨라스케스를 보기 위해 귀족과 지식인이 문을 두드렸다. 벨라스케스는 이들과 교류했다. 인맥 다지기는 일도 아니었다. 그림도 잘 그려줬다. 늘 명작을 뽑았기에 잘나가는 나리들도 그를 좋아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를 꿈꿨다. '그래봤자 시골 촌뜨기'로 불린 이달고를 넘어 신분 세탁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했을 터였다. 헛된 바람은 아니었다. 당시 왕족과 귀족은 가장 젊은 날을 남겨줄 화가를 원했다. 그 시절 화가는 권력과 명예, 안정적인 수입을 갈구했다. 이들은 서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있는 자는 힘, 그리는 자는 실력을 약간씩 희생하면 됐다. 그렇기에 융성하고 있는 직업이 궁정 화가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쿠스의 승리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했다.

1623년, 벨라스케스에게 영화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에 로드리고 데 빌란도란도가 사망했다. 펠리페 4세가 특별히 아낀 궁정 화가였다. 벨라스케스는 추천자 명단에 이름이 쓰였다. 펠리페 4세의 조언자 역할을 한 올리바레스 백작마저 벨라스케스를 요즘 말로 '강추'했다. 벨라스케스가 그간 쌓고 다진 인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 친구, 진짜 괜찮은데…." 나이도, 신분도 상관없이 일단 써보라는 권유가 빗발쳤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펠리페 4세의 기마상

"그대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실바(Diego Velázquez de Silva)인가?"

"예. 실망하시지 않게끔 하겠습니다." 같은 해 8월16일, 벨라스케스는 자기 앞에 앉은 펠리페 4세에게 고개를 숙였다. 벨라스케스는 붓을 쥐었다. 펠리페 4세를 그렸다. 작업은 고작 하루였다. 펠리페 4세는 그림에 감격했다. 이 남자 작품에는 억지가 없었다. 자신을 멋있게 그리지 않았다. 부자처럼 그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위엄이 있었다. 기품이 뚝뚝 흘렀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온 거요?" 펠리페 4세가 벨라스케스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오늘부터 궁정 화가요." 펠리페 4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결심한 듯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그 누구도 내 초상화를 그릴 수 없소. 당신 말고는." 벨라스케스는 이날부터 평생 궁정 화가로 생활한다. 2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빼곤 죽을 때까지 왕궁에서 살게 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펠리페 4세의 입상

펠리페 4세가 특히나 아낀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펠리페 4세의 입상'이다.

청년 펠리페 4세가 왼손을 칼 손잡이에 올렸다. 나라를 지키는 자라는 뜻이다. 오른손에는 종이를 쥐고 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였다. 그림은 담담하다. 빛나는 장신구도 주렁주렁 매달지 않았다. 진귀한 기념품도 없었다. 그럼에도 고귀한 왕의 역할, 견고한 왕권을 모두 담아냈다.

“이탈리아 가보라” 루벤스의 조언
페테르 파울 루벤스, The Judgement of Paris

그 사람은 자기 공기에 에워싸여 자신의 법칙 아래 살았다.

낯설게, 외롭고 고요하게, 귀족들 사이에서 성자처럼 거닐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페테르 파울 루벤스였다. 말년을 향해가고 있는 위대한 화가였다. 1628년의 어느 날, 벨라스케스는 부푼 마음으로 섰다. 루벤스. 그를 기다렸다. 잉글랜드 외교 건을 갖고 스페인 왕궁에 온 그는 과연 기운이 남달랐다. 여전히 힘이 넘쳤다. 지성과 유머도 가득했다. 두 불세출의 화가는 티치아노를 존경하는 점이 똑같았다. 루벤스도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뜯어봤다. 루벤스 또한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궁정 화가 6명을 다 씹어먹었다는 이 청년의 작품이 궁금하던 차였다. 벨라스케스의 실력은 놀라웠다. 절제된 아름다움은 경이로웠다. 딱 하나 아쉬웠다. 세련됨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스페인은 미술 변방이었다. 르네상스의 바람도 피해 간 곳이었다.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등 소수의 천재가 겨우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식이었다. "이보게, 젊은 화가." 루벤스가 벨라스케스에게 말을 툭 던졌다. "여기서 뭘하는 건가? 당장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

티치아노, 천상과 세속의 사랑
디에고 벨라스케스,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벨라스케스는 곧장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티치아노의 그림을 실제로 봤다. 베네치아와 피렌체, 로마 등을 1년 반 동안 순회했다. 와보니 루벤스 말을 듣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라스케스는 로마에서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그렸다. "당신 아내 비너스가 마르스와 밀회를 하고 있어." 일에 정신 팔린 불카누스에게 아폴로가 뛰어와 고자질하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고전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 인체 묘사, 풍부한 색채는 벨라스케스가 비로소 이탈리아 미술까지 소화했음을 뜻한다. 각 인물의 충격, 불신, 허탈 등 표정은 벨라스케스가 특유의 담담함도 잊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그림에는 한층 깊이감이 생겼다.

“그림이 깊어요, 무진장 깊어요”

"…그림은 괜찮은가?"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습죠. 감히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이 깊어요. 무진장 깊다는 말입니다." 모라는 울먹였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눈시울이 자꾸 아렸다. "그런데요. 나리." "왜?" "저따위를 왜 그린 겁니까."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죄송해요." 그림을 돌려받은 벨라스케스가 돌아섰다. "미안했어. 늘." "무엇이요?" "자네와 자네 친구들에게. 고매하신 그 사람들 들러리로 내가 많이 그렸잖아."

디에고 벨라스케스, Don Baltasar Carlos with a Dwarf

모라는 벨라스케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모라 또한 처음에는 벨라스케스도 잔인한 '몰아주기' 문화를 이어가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달랐다. 그만은 어떤 그림 속에서도 모라를, 자기 동료를 욕보이지 않았다. 각자의 생각과 성격을 가진 인간으로 표현했다. 그만은 소인을 귀족의 외모를 빛나게 하는 도구로 그리지 않았다. 모라는 멀어져가는 벨라스케스를 한참 쳐다봤다.

교황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

"이건 너무 사실적이잖아."

1649년,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그림을 받아 들곤 혼잣말을 했다. 스페인 최고 궁정 화가라는 이 자가 그린 자기 초상화는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섬뜩할 정도였다. 주름살, 날카로운 눈빛, 뾰로통한 표정…. 75살 먹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교황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얼굴과 모자, 망토, 의자, 커튼 등은 모두 격정적인 붉은색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그저 보고만 있는데도 속이 막 뜨거웠다.

벨라스케스는 그 해에 다시 이탈리아를 견학했다.

근 20년 만이었다. 벨라스케스는 2년 반을 머물렀다. 그 사이 인노첸시오 10세 측의 주문을 받았다. 이를 받아들여 그린 게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이었다. 교황은 처음에는 이 그림을 싫어했다. 부담스러웠다. 보정된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 마지못해 받아들였다는 설, 보다 보니 매력에 흠뻑 취했다는 설이 있다. 교황은 벨라스케스에게 상패와 금목걸이를 내려줬다. 괜찮은 값이었다. 훗날 교황의 초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남게 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파레하의 초상

비슷한 시기에 벨라스케스는 그 당시로는 또 다른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흑인 초상화를 그렸다. 사실상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첫 흑인 단독 초상화다.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모델 이름은 후안 파레하였다. 벨라스케스 소유의 스페인 남부 출신 노예였다. 벨라스케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조수로 두고 그림을 가르쳤다. 파레하는 이 그림이 그려진 해에 사슬을 풀었다. 벨라스케스의 도움으로 해방됐다. 그는 스승을 따라 화가가 된다. 제2의 생을 살게 된다.

실력의 절정기…‘화가들의 화가’로 올라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일부 확대)

165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궁.

벨라스케스의 작업실은 소란스러웠다. "공주님. 여기를 보세요. 허리를 조금만 더 빳빳하게…. 이렇게 해야 더 예뻐요." "머리를 다시 손질하고, 옷매무새도 정리해드릴게요. 물 드실래요?" 마르가리타 공주는 눈부신 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시녀들의 호들갑은 익숙해보였다. 소인 둘은 공주와 한 뼘 떨어진 곳에서 쭈뼛댔다. 감히 더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더 멀어지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했다. 신분 낮은 자신들 따위야 관심 밖이라는 걸 알고서야 긴장을 푸는 듯했다. 개를 괜히 툭툭 건들기도 했다. 시종과 호위병은 서로의 자리에 서 있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일부 확대)

"국왕께서 오십니다!"

목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가 입장했다. 순간 거의 모든 이가 국왕과 왕비를 바라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국왕은 자기 딸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고 미소 지었다. 왕비도 공주를 향해 흐뭇한 웃음을 보냈다. 마르가리타 또한 아빠와 엄마를 보고 옅게 웃었다. 원하는 걸 다 가졌기에 원하는 게 없는 미소였다. 바라는 걸 다 얻을 수 있기에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제일가는 현자들조차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놈아. 국왕께서 오셨어!" 나이 든 소인이 어린 소인의 팔을 마구 잡아당겼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일부 확대·거울에서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를 볼 수 있다.)

'이거다…!'

벨라스케스는 이 모습을 보고 그림을 구상했다. 때마침 공주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구상할 때였다. 어린 공주의 싱그러움, 꼬마 권력자의 위엄을 어떻게 해야 한 화폭에 그릴 수 있을까. 벨라스케스는 국왕과 왕비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국왕 부부는 사랑스러운 공주를 보고 있다. 이들 모습은 저 멀리 거울에 담겨있다. 공주는 단아하다. 화사하다. 어떤 걱정도 없어 보인다. 모든 일에 무관심해보인다. 겸손하게 복종하는 시녀, 충직해보이는 소인 등 공주 외에 모든 이도 영혼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대여, 고맙지만 일단은 국왕 부부의 시선이 돼 공주님부터 보시게." 벨라스케스는 그림 안에 자신도 그렸다.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작업하던 중 국왕 부부를 막 본 듯하다. '제 모든 것을 이 그림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기에 제 영혼까지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말년의 티치아노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라스 메니나스)'이다. 가까운 미래에 마네, 휘슬러, 피카소 등 수없이 많은 화가는 이 그림에 감동하고 수없이 따라 그린다. 벨라스케스를 진정한 '화가들의 화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꼽히게 된다.

‘귀족’ 꿈 이루고서…‘시녀들’ 그림 덧발랐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화상

벨라스케스가 평생 꿈을 이룬 건 노년기인 1658년이었다.

벨라스케스는 기화가 될 때마다 산티아고 기사단 가입에 도전했다. 순수 혈통의 귀족만이 가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에 대고 거듭 설득했다. 그간 자신의 공을 설명해줄 증인 100여명을 섭외했다. 번번이 실패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왕의 침대보를 직접 갈고, 궁전의 가구 배치도 알아서 다했다. 축제와 행사 준비 등 잡다한 일을 모두 떠맡았다. 결국 그 해, 펠리페 4세가 못 이기는 척 벨라스케스에게 기사단 제복을 건넸다. 교황도 벨라스케스에만 특별 허가를 내려줬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일부 확대)

이제 꿈꾸던 신분을 쟁취했다.

시골 촌뜨기로 불린 이달고에서 오직 실력과 인맥만으로 신분의 벽을 깨부쉈다. 너무 신난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집무실로 내달렸다. 그림 '시녀들'이 크게 걸려있었다.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 자기 가슴 부분에 붉은 십자 문장을 덧발랐다. "오! 이제 됐습니다." 만감이 교차했다. 차별하는 이를 저주하던 순간, 그 비참함을 알기에 차별받는 이를 배려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1660년,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펠리페 4세 딸 마리아 테레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두 나라는 이를 계기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벨라스케스는 이번 행사에서 선보일 전시 기획과 장식 디자인 등 일을 맡았다. 그는 이제 61세였다. 왕은 여전히 그를 믿었다. 그만을 신뢰했다. 일이 줄지 않았다. 쉴 틈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벨라스케스는 그해 7월31일 열병에 걸렸다. 도저히 낫지 않을 것 같았다. 벨라스케스는 8월6일 눈을 감았다. "나는 높은 수준의 미술에서 2등이 되기보다 평범한 것들의 1등 화가가 되겠다." 벨라스케스는 이 신념을 평생 꺾지 않았다.

〈참고 자료〉

노르베르트 볼프,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로니에북스

Kevin ingram, Diego Velazquez's Secret History, 프라도 미술관 정기간행물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11)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2)“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3)‘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4)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5)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6)‘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7)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8)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9)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0)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1)“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2)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3)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24)“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후암동 미술관 인물 편 읽는 순서〉

1)“성폭행 피해자는 나야!” 고문도 견딘 그녀…복수는 우아했다[후암동 미술관-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편] - 영원한 복수자 (2023. 1. 28.)

2)“예쁜 내 금발 공주님”…‘딸바보’ 국왕 눈에선 꿀이 뚝뚝[후암동 미술관-디에고 벨라스케스 편] - 고결한 관찰자 (2023. 2. 24.)

3)“아내·자식·명예 다 잃었다”…그런데 왜 ‘빵’ 터지셨어요[후암동 미술관-렘브란트 편] - 빛의 마술사 (2023. 1. 7.)

4)‘이 그림’ 때문에 화형당할뻔…어느 야심가의 기구한 삶[후암동 미술관-프란시스코 고야 편] - 흑화한 사상가 (2023. 2. 4.)

5)‘미녀 그리기’에 진심이었던 이 화가, 진짜 이유[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르누아르 편] - 행복을 그린 화가 (2022. 12. 24.)

6)“고갱 그놈, 도대체 왜 그래?” 악마인지 ‘악마의 재능’인지[후암동 미술관-폴 고갱 편] - 고귀한 야만인 (2022. 12. 3.)

7)“나랑 6년 계약해” 유명 女배우의 파격제안…인생 달라졌다[후암동 미술관-알폰스 무하 편] -체코의 긍지 (2023. 2. 18.)

8)“백번은 넘게 봤겠다” 모두 아는 ‘이 절규’의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에드바르 뭉크 편] - 노르웨이의 현자 (2022. 12. 31.)

9)“이놈의 짧은 다리 때문에” 카바레 스타의 영광과 몰락[후암동 미술관-툴루즈 로트레크 편] - 작은 거인 (2022. 12. 17.)

10)“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천재와 맞선 천재 (2022. 11. 5.)

11)눈동자 없는 기괴한 여자 그림, 알고 보니[후암동 미술관-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편] - 파리의 귀공자 (2022. 12. 10.)

12)숨참고 키스 다이브!…아내가 그렇게 좋으셨어요[후암동 미술관-마르크 샤갈 편] - 순수한 방랑자 (2023. 2. 11.)

13)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진짜’ 괴짜 (2022. 9. 3.)

14)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피·마 대전 (2022. 9. 10.)

15)3번 유산·35번 수술의 악몽…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후암동 미술관-프리다 칼로 편] - 고통의 여왕 (2023. 1. 14.)

16)“내 천사여” 편지 사방팔방에 ‘뽀뽀’…한 무연고자의 죽음[후암동 미술관-이중섭 편] - 아고리, 나의 아고리 (2023. 1. 21.)

17)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우아한 전사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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