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F에 지분 팔면서 인수대금 절반 대여
SPC·지주사 설립…LBO 배임논란 차단
일감 규제 피하면서 공동경영권은 확보
5년간 기업가치 20% 성장 인정됐지만
FI 90% 수익률 실현…SK 몫 성과 줄어
지난해 공모가 거품 논란에 기업공개(IPO)에 실패했던 SK쉴더스가 결국 글로벌 사모펀드(PEF)에 팔린다. 상장이 좌절된 지 채 1년도 안돼 해외 ‘큰 손’과의 거래가 성사됐다. 재무적투자자(FI)의 투자회수와 함께 경영권을 유지하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했다. 지난 20여년간 재계에서 가장 활발한 인수·분할·합병으로 남다른 성장을 한 SK그룹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교묘한 구조다.
# 팔면서 돈 사는 쪽에 돈 빌려줘…차입매수(LBO) 닮은 꼴
SK스퀘어는 보유한 SK쉴더스 지분 2187만주를 EQT파트너스(EQT)에 8646억원에 9월까지 팔기로 했다. 코리아시큐리티홀딩스(KSH)라는 회사를 설립해 기존 SK쉴더스 주식을 포괄적으로 이전한 후 신설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다. SK쉴더스는 KSH의 100% 자회사가 된다.
1주당 거래 가격은 3만9533원이다. 시가총액 3조원다. 지난해 4월 SK쉴더스가 상장과정에서 희망공모가를 제시하기 위해 평가했던 3조7690억원 80%다. 동종업계 1위 에스원 시총도 이 기간 2조6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 대로 20% 가량 하락했다. 상장을 추진할 때 제시한 가치에서 그간의 증시 하락 정도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파는 쪽인 SK스퀘어가 사는 쪽인 EQT에 주식 매매대금 가운데 4500억원을 빌려주는 대목이다. 빌리는 주체는 EQT가 KSH 인수를 위해 100%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 소테리아비드코(Soteria Bidco SCSp)다.
소테리아비드코(SB)는 대신 보유한 KSH 지분 전량을 SK스퀘어에 담보로 제공한다. 쉽게 말해 SK스퀘어에서 주식을 사면서 살 돈의 절반을 빌리고 대신 매입한 주식 전체를 다시 담보로 맡기는 외상거래다. 엄밀히 SK스퀘어가 이번 거래로 당장 손에 쥘 현금은 4146억원이다.
4500억원의 상환재원도 관심이다. 빌리는 주체인 SB의 ‘돈줄’은 KSH이고 결국 SK쉴더스다. 기업 인수를 위해 차입한 돈의 상환의무가 결국 피인수기업에 넘어간다는 점에서 차입매수(LBO)와 꽤 닮았다. 배임 논란을 피하려면 SB와 KSH가 합병하면 깔끔하다. 굳이 KSH가 설립된 이유일 수도 있다.
SK쉴더스 매각 전후 주요 주주간 지배구조 |
# SK그룹 도움 필수…‘일감’ 규제 피하며 경영권 유지
SK쉴더스는 2018년 SK텔레콤이 맥쿼리자산운용컨소이엄과 함께 인수한 물리보안업체 ADT캡스와 사이버보안회사 SK인포섹이 합병해서 만들어진 회사다. 합병 직전인 2020년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ADT캡스가 8347억원, 1099억원이고 SK인포섹이 3147억원, 264억원이다.
SK쉴더스는 SK그룹 매출 비중이 30%에 달한다. 사이버보안 부분의 계열사 의존도가 특히 높다. 계열사 지분이 50%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공정거래법 제47조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등 금지) 대상이다. 이번 거래로 SK스퀘어 지분율이 50% 아래로 떨어지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
EQT파트너스는 발렌베리그룹의 투자지주회사 인베스터AB가 1994년 설립했다. 운용자산 1130억유로(한화 약 156조원)로 유럽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게 목적이다. 기업을 영구히 보유하지 않는다. SK쉴더스 지분도 언젠가는 재매각해야 한다.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하면서도 SK스퀘어는 공동경영자로 SK쉴더스 경영에 참여한다. 파트너 EQT가 보유한 지분전량에 담보권을 가진 강력한 공동경영자다. SK쉴더스의 핵심이익이 집중된 일감은 SK스퀘어와 SK㈜의 결정에 좌우된다. 파킹 같은 매각이다. 총수익맞교환(TRS) 방식도 떠오른다.
EQT가 투자회수를 위해 다시 SK쉴더스 상장을 추진하든지 아니면 지분을 살 새로운 원매자를 찾을 수도 있다. SK쉴더스에 SK그룹 일감이 많아 어떤 지배구조 변화이든 공동경영자인 SK스퀘어와 협의 이상의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2대 주주 맥쿼리 5년만에 90% 수익…회사 성장 이상의 투자성과
SK그룹은 2018년 야심차게 ADT캡스를 인수했다. 그런데 채 5년도 안돼 다시 파는 이유는 뭘까? 5년 전에 인수를 주도한 것도 이번에 매각작업을 이끈 것도 당시엔 SK텔레콤, 지금은 SK스퀘어를 이끌고 있는 박정호 대표다. 당시만 해도 SK텔레콤은 투자가 목적인 지주회사도 아니었다.
SK쉴더스는 지난해 4월 상장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클라우드 보안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고, 우수 기술 인력도 확보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까지 약속했었다. 하지만 공모가 논란이 일자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며 제3자에 보유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유는 맥쿼리자산운용컨소시엄인 블루시큐리티인베스트먼트(이하 블루시큐리티)의 투자회수다. 블루시큐리티는 지난해 상장 과정에서 보유지분의 절반 가량 구주매출로 처분하려 했었다. 이번 거래로 블루시큐리티는 상장하는 것보다 나은 조건으로 지분 전량을 처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상장이 성공했다면 블루시큐리티는 보유 지분의 절반 가량만 1주당 최소 3만1000원, 최대3만8800원에 팔아야 했다. 나머지 절반은 6개월간 보호예수로 묶여 이후 주가 변동에 노출될 뻔 했다. 하지만 이번 거래로 1주당 3만9533원에 지분 전량을 1조857억원에 팔 수 있게 됐다.
2018년 SK텔레콤과 블루시큐리티 각각 7020억원, 5740억원을 들여 PEF인 칼라일로부터 ADT캡스를 인수했다. 이후 SK인포섹과 합병되면서 블루시큐리티 지분율은 38%대로 떨어졌지만 결국 5년만에 90%가까운 수익을 내게 됐다.
한편 SK스퀘어는 이번 거래에서 SK쉴더스의 기업가치(EV)가 5조원으로 평가됐다며 5년전 2조9700억원 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EV는 시총에 순차입금까지 포함한 수치다. 5년 전 3조원은 ADT캡스만의 가치다. 2020년 합병당시 SK인포섹은 ADT캡스의 5분의 1이었다.
추정하면 3조6000억원이던 EV가 5조원이 된 셈이다. 인수금융 4500억원을 빼면 4조5000억원 정도다. 5년간 연평균 4% 정도 성장한 셈이니 ‘괄목’할 정도는 아니다. EQT가 재매각할 때 SK쉴더스의 EV가 지금보다 괄목할 정도로 커지지 못한다면 이번 매각의 명분이 꽤 퇴색될 수도 있겠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