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이례적 빠른 대처”…예금자 불안 잠재운 전액 보증[SVB파장]
뉴스종합| 2023-03-14 08:55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실리콘밸리은행 지점 앞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대기하는 가운데 데드라 돈(오른쪽 네번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조사관이 예금자 보호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글로벌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미 연방정부의 빠른 초동 대처로 안정을 되찾고 있다. 금융위기 때도 나오지 않았던 예금 전액 보증 카드가 주효했단 평가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의 실리콘밸리은행 지점 앞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긴 줄에서 대기했다. 전날 발을 동동 구르며 예금의 행방에 대해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전사소프트웨어(ERP) 개발 업체 오터의 설립자 샘 리앙은 “모든 예금자가 모든 예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연방 정부 발표에 안심하게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시애틀 기반의 스타트업 쉘프 엔진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칼브 역시 CNN에 “기존에 25만달러(3억2650만원)까지만 보장하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대응으로는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어 자칫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었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부가 취한 긴급조치에 대해 연설한 것을 듣고 상당히 안심했다”고 전했다.

SVB 폐쇄 이틀 만인 12일 소집된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에서는 전례 없는 대응 조치들이 나왔다. 우선 SVB와 뉴욕주의 시그니처은행에 대해 전액 예금 보증을 약속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고강도 조치다.

또한 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평가손실을 입은 미 국채를 내다 팔지 않아도 되도록 미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를 담보로 1년 자금을 대출할 수 있도록 은행 유동성 지원기금(BTFP)을 도입했다. 재무부 환율 안정기금에서 250억 달러(32조6500억원)를 보증하는 내용이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CNN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FDIC의 예금자 보호 확대 정책이 SVB 고객들을 안정시키는 데 주효했다는 점은 캐시 호철 뉴욕주지사가 연방정부에 시그니처 은행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연설을 통해 은행에 대한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데 주력했다. 그는 “지난 며칠 우리 행정부의 신속한 조치 덕분에 미국인들은 은행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며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예금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동성 위기 우려가 제기된 각 은행도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찰스 슈왑 경영진은 월간 활동 명세서에서 향후 12개월 동안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순 신규 자산을 통해 1000억달러의 현금 흐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제2의 SVB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 퍼스트리퍼블릭은 연방준비제도(Fed)와 JP모건체이스를 통해 700억원의 미사용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SVB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수석 애널리스트는 “15년 전의 위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며 “당시에는 은행들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안심했지만 지금은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한 세대 전보다 더 탄력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도드 프랭크 법안 등 금융개혁을 통해 안전망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비우량대출자(서브 프라임 등급)을 상대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파생상품이 위기의 발단이 됐던 2008년과는 달리 SVB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에 집중 투자했다는 점도 큰 차이다.

다만 급격한 금리 인상이 또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아직도 높다. 옌스 하겐도프 킹스칼리지 금융학 교수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 연기금 등 많은 기관이 현재까지 재무제표에 보고된 것보다 훨씬 낮은 가치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한 손실은 막대할 것이고 문제의 규모가 우려할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각국은 SVB 사태의 불똥이 자국까지 튀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영국계 은행인 HSBC는 영국 스타트업계가 예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SVB의 영국법인을 단돈 1파운드에 인수키로 했다. SVB의 중국 합작법인인 SPD실리콘밸리은행은 고객들에게 “은행이 SVB로부터 독립적이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인출 자제를 요청했다. 중국의 금융당국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주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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