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코스 옆으로 버려진 일회용컵들. [와이퍼스 제공] |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코로나 이후 정말 오랜만에 달렸더니 기분이 너무 상쾌하더라고요.”
지난 주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A씨. 목소리엔 생기가 넘쳤다. 그런데 A씨가 미처 깨닫지 못한 풍경이 있다. 마라톤 코스 길가에 빼곡하게 버려져 있는 일회용컵들. 이날 마라톤에 참여한 이는 3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1개씩만 썼어도 3만개의 일회용컵 쓰레기가 거리로 쏟아진 셈.
마라톤이 인기다. 러닝 운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 열기는 마라톤까지 확산됐다. 특히나 올해는 코로나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마라톤 대회가 대거 부활한다.
건강도 챙기며 인내심에 도전하는 마라톤, 정말 좋은 운동이고 취미생활이다. 그런데 조금만 신경 쓰면 우리뿐 아니라 지구에도 더 좋은 행사가 될 수 있다.
마라톤 코스 옆으로 버려진 일회용컵들. [와이퍼스 제공] |
플로깅 환경단체 와이퍼스에 따르면, 지난 주말 마라톤 대회가 열린 서울 종합운동장 인근엔 수거하기 힘들만큼 수많은 일회용품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는 “종이컵, 물품 보관 비닐, 각종 음료 등이 너무나 많았다. 이날 석촌호수 인근부터 20ℓ 쓰레기봉투 20개를 주었는데, 그 활동이 무의미하게 여겨졌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실제 현장엔 가장 먼저 수많은 일회용컵 쓰레기가 가득 눈에 띄었다. 마라톤 참여자들이 경기 도중 마시고 길가에 버린 종이컵들이다. 코스를 따라 마치 파란색 쓰레기더미 줄이 생긴 듯했다.
경기 도중 마시는 일회용컵만 전부일까. 각종 국내 마라톤 대회의 형식은 대체로 유사하다. 참가신청을 받으면 먼저 택배로 티셔츠 등 각종 기념품을 사전에 전달받는다. 3만명이 참여한다고 치면, 행사 준비 전부터 3만개의 택배 쓰레기가 나오는 셈이다.
종합운동장 인근엔 마라톤대회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와이퍼스 제공] |
마라톤 대회에 쓰인 음료 플라스틱 PET병들. [와이퍼스 제공] |
이름·번호표도 부착해야 하는데, 이 역시 일회용품이다. 땀에 젖지 않는 재질 등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쓰레기다. 이 역시 한번 쓰이고서 다 버려진다.
경기 당일 쓰이는 일회용컵은? 실제 경기를 참여하면 1번만 마시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채워진 음료를 다 마시는 적도 드물다. 몇 모금 마시곤 버리고, 또다시 컵을 집어든다. 3만명이 3잔씩만 마셔도 거의 10만개에 이르는 일회용컵 쓰레기가 양산된다. 그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 PET병도 역시 쓰레기다.
모두 바꿀 수 없다면, 일회용컵 만이라도 줄일 순 없을까. 실제 이날 와이퍼스 소속 한 회원은 텀블러를 소지하고 대회에 참여했다.
와이퍼스 소속 회원이 텀블러를 들고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모습. [와이퍼스 제공] |
다회용컵을 배치, 특정 장소에서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방안도 충분히 현실 가능하다. 실제 와이퍼스는 마라톤 대회 일회용컵 사용과 관련, 서울육상연맹 측에 다회용컵을 제공하고 수거하는 식의 협업을 제안한 상태다.
올해엔 마스크 의무착용 해지 등과 맞물려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연중 예정돼 있다. 한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았던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참여 열기도 뜨겁다.
최근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는 회사원 B씨는 “골인 지점에 도착하면 비닐 봉지에 메달과 음료수, 과자 등을 나눠주는데 그것도 꽤 많은 쓰레기가 나오더라”며 “테이블 위에 쌓아두고 포장 없이 나눠 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어 “건강하자고 뛰는 대회인데 쓰레기가 많이 쏟아지면 곤란하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진 만큼 마라톤 행사의 환경 감수성도 높아져야 한다”며 “시민들의 건강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환경에도 도움이 되도록 개선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