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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국회 통과 유감” 양곡법 거부권…‘밀리면 안된다’ 위기감
뉴스종합| 2023-04-04 11:29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카드를 꺼내들며 ‘정면돌파’에 나선 것은 ‘더 이상 밀리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하면서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서는 양곡법부터 밀리게 되면 추후 거대야당이 더 많은 법안을 강행처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미 양곡법 뿐만 아니라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방송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등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한 상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헤럴드경제에 “지금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려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며 “여기서 자칫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 그 다음에는 댐에 구멍이 뚫려서 와르르 무너지듯 될 수 있으니까 (양곡관리법부터 틀어막겠다는) ‘초전박살’ 전략인 셈”이라고 봤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도 “국회에서 정부여당의 입법이나 정책, 제도가 번번이 거대야당에 묶여 좌절되고 있는 상태다보니, 윤 대통령으로서도 법안에 대한 찬반을 분명히 하고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을 확실히 추진해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

나아가 양곡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전초전’ 성격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은 양곡법을 농민표심을 끌어 모을 카드로 활용하고, 반면 여소아대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한민국 농민이 가족들까지 포함한다면 약 500만~600만명쯤 된다고 보면, 지금 상황에서 양곡법이 시행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유리해질 것”이라며 “윤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이벤트는 내년 총선인 만큼, 여야 협치보다는 총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소장도 “윤 대통령은 오히려 ‘총선 때 승부를 보자’는 생각일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 노조와 시민단체 회계투명화 등을 추진하며 나름대로 재미를 본 만큼, (양곡법 거부권 역시) 지지층 결집에 대한 강력한 신호라고 본다”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양곡법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과 정책이 중도층을 의식하지 않고 양당의 지지층 결집으로만 모아지면서 양당 모두 합리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협소해지고 있다”며 “지난 대선 때부터 이어진 적대적 공생관계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

국가재정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타협하기 어려운 내용의 법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양곡관리법은 쌀 생산량이 3~5% 범위에서 초과 생산될 경우,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8% 범위에서 하락할 경우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양곡법이 시행되면 쌀 매입에 1조4000억원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1년에 1조원 이상이 매년 들어가는 건데, 국가재정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며 “(대통령으로서는) 야당과의 관계보다는 국가재정과 헌법의 근간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엄 소장 역시 “(양곡관리법은) 결국 정부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 있을 수밖에 없다”며 “건전재정, 재정 효율화 등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양곡관리법이) 양보할 수 없는 내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1호 거부권’이다.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 상시청문회 개최를 핵심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지 7년 만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의 경우 노태우 대통령 7건, 노무현 대통령 6건, 이명박 대통령 1건, 박근혜 대통령 2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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