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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중재판정부, 정부가 최소기준대우의무 위반했다 판단”
뉴스종합| 2023-06-23 16:20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투자자-국가 간 국제중재(ISDS) 사건에서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협정상 ‘최소기준대우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엘리엇 ISDS 사건 중재 판정부의 주요 쟁점별 판단을 정리해 공개했다. 지난 20일(한국시간) 저녁 중재판정부의 판정 사실을 공개한지 3일 만에 나온 추가 설명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 사건 중재판정부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승인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이 국민연금의 합병 표결에 개입한 행위가 협정상 국가 책임의 근거가 되는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사실상 국기기관이므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행위는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고 봤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승인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8년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ISDS를 제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합병 계획을 발표했는데,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였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찬반 논란에서 ‘키’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같은 해 7월 투자위원회를 열고 합병 찬성 입장을 정했고, 그달 합병안이 결국 통과됐다. 그런데 이후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고서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합병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확인됐다.

또 중재판정부는 삼성물산 합병 관련 국내 형사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인용해 한국 정부가 협정상 최소기준대우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한-미 FTA는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한 국제관습법상 외국인에게 인정되는 대우를 최소기준대우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합병 관련 확정 판결은 당시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월이 확정됐던 문형표 전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건이다.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에 찬성하도록 해 국민연금공단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마찬가지로 징역 2년 6월이 확정됐던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사건도 판단 근거가 됐다.

중재판정부는 국내 형사 확정판결을 인용해 국민연금이 사실상 삼성물상 합병에 관해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어 국민연금 표결과 삼성물산 주주들 손실 사이 인과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또 국민연금의 행위가 정부에 귀속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재판정부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지난 20일(한국시간) “한국 정부가 엘리엇 측에 5358만6391달러(한화 약 690억원)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엘리엇이 ISDS를 제기하며 요구한 7억7000만달러 중 배상원금 기준 약 7% 정도가 인용됐다. 또 법률비용으로 정부가 엘리엇에 2890만3188.90달러(약 372억5000만원)를 지급하도록 하고, 엘리엇은 정부에 345만7479.87달러(약 44억5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배상 원금 690억원에 5%의 연복리 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더하면 정부가 엘리엇 측에 지급해야 할 금액은 총 1300억원 상당의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국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가들과 판정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중재 당사자는 관할 흠결, 절차의 심각한 일탈,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이 사건의 법정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선고일로부터 28일 이내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법령과 중재판정부의 절차명령에 따라 판정문 등 이 사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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