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헤럴드광장] 재외공관 대사의 임무를 확인하라
뉴스종합| 2023-06-30 11:20

야당 대표와 주한 중국대사가 비정상회담을 연출한 이후 국내가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에 비정상회담으로 대답하겠다는 목적은 과연 달성했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싱하이밍 대사는 본국 지시의 성공적 수행을 다행으로 여기겠지만 양국 갈등은 격화됐다는 점이다. 다만 우리의 외교 현장에 숙제가 남은 것은 누구도 얘기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싱하이밍의 준비된 발언은 본국의 지시에 따른 계산된 행보였다. 재외대사가 본국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국장급이든, 아니든 정말 대사급 외교관이었다면 본국의 지시를 이행할 때도 외교적 화법을 구사했어야 한다. 대사급 외교관이 언어구사에 지극히 전문적이고 예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본국의 관리가 메시지를 전하면 되지, 고위급 외교관을 따로 파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미 그는 대사급 외교관이라 할 수 없다. 우리 주중대사를 국장급 공무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이해된다.

외교공관장은 주요 주재국 언어나 영어의 외교적 화법에 익숙해야 한다. 만약 주요 주재국 언어를 겨우 일상소통 정도로만 하거나 기껏 실무영어 수준을 구사하는 대사가 있다면 그는 국제외교에서 부적합하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서 외교적 화법은 따로 존재하며, 그것은 해당 언어에서 최상 난이도 영역에 속한다. 사실상 한국어로 일상소통 정도 하는 싱 대사를 두고 한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국제외교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그가 낭독했다는 ‘미-중 갈등에서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발언을 보자. 베팅, 반드시, 후회 등은 외교적 수사에서 배제하거나 극히 신중하게 써야 하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동시에 썼다는 것 자체가 그는 전혀 외교관이 아님을 표명한 것이다. 진정 자신을 주한대사로 생각했더라면 ‘한국은 미-중 갈등에서 어느 한쪽의 패배에 베팅하는 국가가 아닐 것으로 믿는다’고 했어야 한다. 난센스지만 굳이 ‘후회’를 사용해서 협박(?) 외교를 하고 싶었다면 ‘어쩌면 한국에 후회되는 경우가 있다면 미-중 갈등에서 중국 패배 편에 서는 일이다’라고 해도 충분했다. 외교적 화법의 기본은 부정적 단언과 직접적 술어의 회피에 있다. 직접적 단정과 부정적 술어가 필요하다면 그건 본국과 정치인들의 몫이다.

이번 일은 역설적으로 우리 외교 현장에 숙제를 던진다. 우리의 대사급 외교관들은 치열한 외교 현장에서 능통한 외교화법으로 비독립적 능동 외교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교부는 그들이 본국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지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외교역량을 발휘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최소한 월별, 분기별 정밀 외교전략 보고서를 보내게 하고, 그것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장관은 그것을 토대로 국제외교의 상황을 파악하고 국가 외교 전략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보고서는 이후 역대 정부의 주요 외교정책 수립에 활용되고 외교관의 교육자료로도 사용돼야 한다. 외교화법을 모르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대사들은 과감히 교체해야 한다.

조우호 덕성여대 교수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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