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보다 골프…“의원 시절에도, 도지사 시절에도 인생의 낙”
과거 ‘美출장 중 골프’ ‘경남지사배 공무원 골프대회’로 도마
“골프, 이젠 대중 스포츠” vs “여전히 소수의 고급 스포츠”
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면담을 마친 후 이동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정권만 바뀌면 공무원 기강을 잡는다면서 공무원 골프를 금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공무원이 등산과 축구를 하면 괜찮고, 골프는 하지 말라고 하는 위정자의 의식은 잘못됐다.” (2015년 9월5일, 제1회 경남도지사배 공무원 골프대회 인사말 중)
홍준표 대구시장의 남다른 ‘골프 사랑’이 또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폭우가 내리던 지난 주말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징계 절차를 밟게 됐다. 당 윤리위는 이르면 오는 26일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최종 징계 수위를 놓고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사행 행위·유흥·골프 등의 제한’을 다룬 당 윤리강령 22조를 놓고 당 내에서 찬반 여론이 공존하고 있다. 골프가 ‘귀족 스포츠’로 여겨지며 금기시되던 과거와 달리 전 연령층이 즐기는 대중 스포츠가 됐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골프를 치지 않는 국민이 더 많고, 홍 시장의 해명이 부적절했다는 의견 역시 팽팽하다.
홍 시장의 골프 사랑은 정치권에 잘 알려진 이야기다. 평소 술을 멀리하는 대신 지인들과 주말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 역시 그가 1999년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의원직을 잃고 미국에 머물던 시절 골프장에서 쌓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구 지역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의원 시절에도, 도지사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홍 시장에게 골프란 ‘인생의 낙’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사건·사고도 많았다. 경남도지사 시절이던 2015년 3월 미국으로 떠난 출장에서 평일인 금요일 골프를 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곤욕을 치렀다. 경남도는 홍 지사의 출장 일정이 종료된 금요일 미국 동부지역 농·수산물 수출시장을 개척하고자 현지 교민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비공식 비즈니스’ 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홍 지사는 페이스북에서 “출장 중 금요일 오후에 골프를 했다는 것은 사려 깊지 못했던 것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6개월 뒤인 9월 ‘경남도지사배 공무원 골프대회’를 개최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경남도가 그해 4월 무상급식을 중단시킨 것과 관련해 ‘정작 도민 세금으로 골프대회를 치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홍 지사는 대회를 강행하고, 개막식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공무원이 ‘관피아’ 논란에 휩쓸리고 연금개혁 과정에서 사기가 떨어졌다”며 “공무원 사기가 떨어지면 나라가 융성할 수 없다”고 개최 배경을 밝혔다. 또 “우리나라에 골프가 처음 들어온 지 120년이 됐고, 골프 인구가 330만명이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권만 바뀌면 공무원 기강을 잡는다면서 공무원 골프를 금지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공무원이 등산과 축구를 하면 괜찮고, 골프는 하지 말라고 하는 위정자의 의식은 잘못됐다”며 “이런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홍 시장이 15일 오전 11시20분쯤 대구 동구의 팔공컨트리클럽(CC)에서 골프를 치다 비가 쏟아지자 약 1시간 만에 중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홍 시장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는 다행히 수해 피해가 없어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며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나”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의 관련 질문도 “어떻게 권위주의 시대 정신으로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느냐”고 맞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당시 대구시가 ‘공무원 비상근무 제2호’가 발령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판을 받았다.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보고할 대구시 상황 자체가 없다”고 한 홍 시장의 해명과 배치됐기 때문이다. 비상근무 2호 시엔 소속 직원의 연가가 중지되고, 전 직원의 20% 이상이 비상 근무를 서게 된다.
이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18일 김기현 대표 지시에 따라 이번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에 돌입했고, 당 윤리위도 같은 날 홍 시장 논란을 회의 안건으로 직권상정했다.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으로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거나 국민과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경우, 경위를 막론하고 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당 윤리강령 22조)’, ‘당원은 예의를 지키고 사리에 맞게 행동하여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아니된다(당 윤리규칙 제4조)’ 위반이 적용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해 골프' 논란과 관련, 19일 기자실을 찾아 유감을 표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연합] |
당 내에서는 당초 ‘제명’을 포함한 중징계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19일 홍 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인 점을 참작해 징계 수위가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21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기 때문에 당원권 정지보다는 경고 수준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당 윤리위가 내릴 수 있는 조치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제명이다.
특히 골프를 문제삼은 윤리강령 22조를 놓고선 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태경 의원은 20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홍 시장이) 사과까지 했기 때문에 그냥 구두경고로 끝냈으면 좋겠다”며 달라진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과거에는 골프가 약간 특별한 스포츠였지만 지금은 대중 스포츠”라며 “골프를 불온시하는 정치 문화, 이건 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한 당 관계자 역시 “골프 인구 1000만 시대”라며 “‘대구는 피해가 없으니 골프를 쳐도 괜찮았다’는 해명은 부적절했지만, 골프 자체가 징계 이유가 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반면 이양수 원내 수석부대표는 20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윤리위원들, 그리고 당 지도부, 그리고 일선 당원들이 다들 엄중한 분위기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징계가 아예 안 나온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며 “드러난 팩트상으로도 당헌당규에 맞지 않는 부분, 지자체장의 행동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 역시 “‘접대 골프’란 말은 있지만, ‘접대 배드민턴’이란 말은 없지 않느냐”며 “아무리 골프 인구가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소수가 즐기는 고급 스포츠로, 국민 정서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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