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서울은 이미 아시아의 허브”…中 컬렉터 몰리고, 알 만한 작품 쏟아지고…
라이프| 2023-09-08 09:48
2023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개막일인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키아프 서울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키아프 서울'은 2002년 처음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로 올해 20개국의 210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프리즈 아트페어'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됐으며 올해는 30개 국의 120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허브라는 점이 증명됐다.”

전 세계 330여 개의 갤러리, 2만여 명의 VIP 컬렉터(수집가)가 서울을 찾았다. 코로나 엔데믹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동시에 열리면서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서울 코엑스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한국의 아트 신(art scene)은 지난 수 십년간 성장, 지속해왔다. 굉장히 풍요롭고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서울의 아트 시장은 인프라는 물론 시장의 측면에서도 이미 허브로서 증명됐다”고 말했다.

VIP 관람객을 맞은 지난 6일을 시작으로 일반 관람객의 입장을 시작한 7일에도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의 열기는 상당했다. ‘미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방탄소년단 RM과 지민, 블랙핑크 로제와 지수, 배우 최지우·박해진·김규리·박기웅을 비롯해 정도련 홍콩M+ 부관장, 토비아스 버거 홍콩 타이쿤미술관 관장,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이웅렬 코오롱 명예회장 등 전 세계 VIP 컬렉터(수집가)들이 첫날 이곳을 찾았고, 일반 관람이 가능했던 7일 역시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지금까지 굉장히 흡족하고 기쁘게 생각한다”며 “서울이야말로 우리가 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재확인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현재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1층과 3층에서 나눠 열리고 있다. 프리즈는 첫 해 당시 엄청난 인파로 인한 소란을 경험, 올해는 운영 방식을 다소 바꿨다. 각 갤러리에 지급된 VIP 티켓을 30% 줄였고, 관람객은 1시간 단위로 받았다. 2회 연속 프리즈 서울에 나온 페로탕 갤러리 관계자는 “작년엔 마치 사고가 난 것처럼 오픈과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쏟아졌는데, 올해는 관람객을 철저히 통제해 컬렉터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프리즈가 ‘시간제 입장’을 둔 덕에 키아프도 지난해보단 ‘선방’했다. 키아프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첫날 방문객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다. 하지만 공룡 ‘아트페어’와 나란히 연 키아프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라는 역사가 무색할 만큼 한산한 모습도 보였다.

둘째 날 프리즈를 찾은 한 관람객은 “키아프엔 한국 화랑들만 있지만, 프리즈는 한국에선 만날 수 없는 세계적인 갤러리가 모두 오니 당연히 프리즈를 먼저 올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키아프에도 세계적인 갤러리가 많았음에도 프리즈의 영향력과 물량 공세에 적잖이 가려진 모습이었다.

2023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개막일인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프리츠 서울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중국 컬렉터의 아트투어 ‘관심’

올해 ‘키아프리즈’의 키워드는 단연 ‘중국 컬렉터’다. 전시장 곳곳엔 중국인 컬렉터들이 가이드와 함께 ‘아트 투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프리즈의 해외 갤러리들은 ‘중국인 컬렉터’들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특히 중국 상해, 홍콩 등지에 지점을 둔 갤러리에는 중국계 컬렉터들이 다수 몰렸다.

상해에 지점을 둔 프랑스 페로탕 갤러리 관계자는 “중국은 컬렉터들이 그룹으로 뭉쳐 다니며 구매하고 좋은 작품을 추천해 다 함께 사가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며 “중국 부호들은 워낙 구매하는 단위가 달라 기대를 많이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중국인 컬렉터들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여러 곳에서 중국컬렉터, 뮤지엄, 갤러리 관계자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굉장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23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임세준 기자

엔데믹과 함께 여행 제한이 풀리고, 자가격리가 해제된 것도 프리즈를 찾는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컬렉터에겐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하우저앤워스 관계자는 “타이밍에 맞아 떨어지며 열린 아트페어를 많은 관람객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자가격리 기간이 길어 엄두를 내지 못한 컬렉터들이 이번엔 마음 편히 오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한국계 미국인’ 컬렉터들도 대거 유입됐다. 때 마침 프리즈 서울엔 ‘포커스 아시아’와 ‘프리즈 마스터스’ 세션을 통해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늘었다. 지난해엔 아시아 작품의 비중이 30% 정도였다면, 올해는 아시아권의 작품을 내놓은 서구 갤러리까지 합치면 50% 정도로 비중이 늘었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세계 시장은 아시아에 주목하고 있고, 아시아에선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이 글로벌 무대로 다가오며 서구권 갤러리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며 “프리즈가 하나의 기회가 돼 아시아 갤러리와 작가들을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키아프리즈’에 국내 MZ 관람객을 비롯해 다양한 해외 컬렉터가 쏟아진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 해외 대형 갤러리 관계자는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볼거리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며 “아트페어 기간 동안 밤새도록 화랑을 여는 한남 나이트, 청담 나이트를 비롯해 음악과 함께 하는 여러 이벤트가 별나게 많아 컬렉터들이 재밌어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수백억 대작은 없지만…알 만한 작품은 오히려 많아

“샤갈, 이 작품 얼마예요? 팔렸나요?”

난데없이 등장한 노숙자 ‘준호’(마우리치오 카텔란, 페로탕 갤러리), 필립 거스턴의 1970년대 대작(하우저앤워스), 피카소의 아기자기한 드로잉(스테판 옹핀), 나비의 날개로 만든 데미안 허스트의 ‘생명의 나무’(로빌란트보에나 갤러리)….

2회차를 맞은 ‘키아프리즈’엔 거장과 인기 작품 위주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머물렀다. 특히 17세기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두루 볼 수 있는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과 대형 갤러리 부스는 관람객이 많아 입장에만 10여분이 걸릴 만큼 사람이 몰렸다.

수 백억원을 훌쩍 넘는 대작은 없었지만, 올해 프리즈 서울엔 알 만한 이름의 작가와 작품이 총출동했다. 사이먼 폭스 CEO는 “올해 참가한 120여개 갤러리가 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을 들고 왔다”며 “가격만 보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피카소를 비롯해 수천 개의 작품이 와있다. 마켓에 가장 어울리는 최고의 작품이 왔다”고 말해다.

미국 대형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는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 ‘붉의 신의 호박’을 580만 달러(한화 약 77억원), ‘핑크 팬더’를 그리는 미국 작가 캐서린 번하트의 회화도 25만 달러(약 3억원)에 팔았다. 무라카미 다카시,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인기 소속 작가 30명의 작품을 모두 가지고 나온 페로탕 갤러리는 오픈 첫날 세 시간 만에 걸려있는 작품이 절반 이상 팔아치웠다. 이 갤러리의 최고가 작품인 무라카미 다카시의 그림은 개막도 되기 전에 팔렸다. 7억8000만원 짜리다.

지난해 하루 만에 100억원 어치의 작품을 팔아치운 하우저앤워스는 올해에도 인기가 좋았다. 개막 첫날 라시드 존슨의 작품(97만5000달러, 약 13억원)에, 조지 콘도의 작품(80만달러, 약 10억6000만원) 등 10여점을 팔았고, 둘째 날에도 니콜라스 파티(125만 달러)와 리타 아크만의 작품(가격 비공개) 판매에 성공했다.

페이스갤러리는 알렉산더 칼더의 1965년작 조각 작품은 물론 조엘 샤피로, 로버트 나바, 키키 스미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팔았다. 타테우스 로팍은 다니엘 리히터의 2023년 신작을 37만5000유로(약 5억 3600만원)에, 리슨 갤러리는 스탠리 휘트니 작품을 55만 달러(약 7억3447만원)에 팔았다.

2023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임세준 기자

프리즈 서울에 함께 한 국내 갤러리도 성과가 좋다. 박서보를 비롯해 하종현·함경아·양혜규·강서경·정연두 등 인기 한국 작가들이 모두 소속된 국제갤러리는 뜨거운 열기를 체감했다. 이미 개막 첫날 박서보 작품을 49만달러(약 6억5000만원), 하종현 작품을 22만3000달러(약 2억9700만원) 등 13개 작품을 팔아치웠다. 둘째 날에도 하종현, 양혜규를 비롯해 6개의 작품을 판매했다. 키아프 부스에서도 우고 론디노네 작품이 줄줄이 나갔다.

국제갤러리는 관계자는 “올해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척 좋다. 많은 컬렉터들이 프리즈를 기다렸다는 느낌”이라며 “한 작가에 쏠리지 않고 다양한 작가들이 관심을 받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화랑에서도 ‘숯의 작가’ 이배의 작품을 들고 나와 오픈도 전에 팔아 치웠고, 리안갤러리는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를 45만 달러(약 6억원)에 팔았다. 학고재는 이준의 작품을 1억원에, 갤러리현대는 이성자의 작품(9000~4만 5000달러)을 판매했다.

210개의 갤러리가 부스를 차리며 키아프엔 MZ(밀레니얼+Z)세대 작가들이 작품이 걸린 갤러리들로 관심이 모아졌다. 권능을 비롯해 30대 중반~40대 초반 인기 작가들 작품을 들고 나온 아틀리에 아키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특히 해외 컬렉터와 관계자들의 판매 문의가 많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단색화’의 인기는 여전했다. 가나아트에선 ‘실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조각 두 점과 박서보의 작품, 샘터화랑에서도 박서보의 작품이 판매됐다.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로 선정된 갤러리그림손의 채성필 작가의 대작, 갤러리나우의 고상우 작가도 출품된 3점이 완판돼 추가 에디션 요청도 쇄도했다. 키아프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미술 시장의 모멘텀 둔화 우려 속에서도 개막 일에 컬렉터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여 예상보다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지난해 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별 수 없이 ‘체급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는 프리즈와 비교할 때 출품작은 물론, 전시 연출 면에서도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패트릭 리 디렉터는 “키아프와 프리즈는 단 한 번도 경쟁 관계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상호보완의 관계를 가지면서도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아트페어로 서로 존중하며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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