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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생소한 병이 앗아간 20대 딸” 그녀가 던진 묵직한 ‘메시지’
뉴스종합| 2023-09-10 15:50
생전의 故문새연씨 모습. [최은화씨 제공]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막상 내 딸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니 쉽게 결정하지 못 하겠더라고요.”

4년 전, 딸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딸을 앗아간 병은 이름도 생소한 모야모야병. 모야모야병은 뇌혈관이 좁아지는 병으로, 뇌출혈로 최초 병원을 방문한 고(故) 문새연씨는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죄책감, 이런 고민은 비단 문 씨 어머니인 최은화씨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만 약 3000명. 그래서 최씨와 문씨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무겁다.

故문새연씨가 디자인에 참여한 치약 용기. [최은화씨 제공]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받은 첫 월급을 어머니에게 줄 정도로 착한 딸이었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진저리칠 정도로 싫어했다.

첫 직장에서 자신의 역할도 넘치도록 잘했다. 용기디자인학을 전공했던 문씨는 화장품 회사에 취업했고, 회사는 문씨가 화장품 연구&개발 등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결과물도 나왔다.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치약 용기가 시중에 나온 것이다.

문씨가 입사 후 받은 첫 급여는 일주일 남짓 일했음에도, 2주치 급여였다. 그만큼 촉망받던 신입사원이었다. 그렇게 그는 화장품 사업이라는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얼른 돈 많이 모아서 우리가 꿈꾸는 사업 시작해서 대박납시당!” (문씨가 최씨에 보낸 편지 내용中)

뇌수술을 받은 후 남긴 故문새연씨 모습. [최은화씨 제공]

무심한 하늘은 문씨가 꿈을 펼칠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뇌출혈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던 문씨는 좌·우뇌 차례대로 수술을 받았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듯 보였으나 손 저림 등 불안한 전조가 찾아 왔고,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

건강관리에 철저했던 문씨는 보통 사람이라면 이틀을 넘기지 못 하고 심정지가 올 상황이었음에도 버텼다. 이는 문씨의 폐, 간, 신장(양쪽)이 4명에게 기증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으로 이어졌다. 최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새연이와 새연이 오빠에게 말했었어요. 불의의 사고라도 당하면 연명치료 하지 말고, 장기기증하라고. 그런데 내가 아니라 딸이 그런 상황이 되니 쉽게 결정할 수 없더라고요.”

생전의 故문새연씨 모습. [최은화씨 제공]

9월 9일은 서울시가 정한 장기기증의 날이다. 최씨 경우처럼 본인의 장기기증을 결심하면서도 가족 및 친지들의 장기기증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부모 혹은 자녀 등 신체를 훼손한다는 죄책감은 장기기증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도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4만1706명이었다. 같은 기간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사망한 이는 2918명, 뇌사 기증자 수는 405명 불과했다.

생전의 故문새연씨와 최은화씨 모습. [최은화씨 제공]

인터뷰 말미에 ‘장기기증을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부탁한다’는 요청에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착한 딸의 장기를 이식 받은 분들이 좋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딸의 일부가 어딘가에 있겠구나’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그분들이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젠가는 그분들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보려고요.”

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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