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르포] “일본식이지만 우리집”…‘적(敵)의 가옥’에 쌓인 한국의 흔적들[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적산가옥편]
뉴스종합| 2023-10-21 13:51
사직작가 오석근의 〈적산 광주(光州) 04〉. 오 작가는 일본식 상가주택(적산가옥)에 담긴 한국인들의 삶을 포착한 작업을 이어왔다. 이 사진은 광주 시내에서 일식 주택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집으로 일식주택의 특징인 도코노마(床の間)는 사라져 없어졌지만 란마(欄間), 쇼지(障子) 등은 사진 속 가구, 진열장 뒤로 볼 수 있다. 본래 쇼지(障子)를 열면 남쪽에 위치한 일식 정원을 바라볼 수 있고 동서로 이동할 수 있는 복도가 나오지만 더 이상 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물건을 진열하고 보관하는 창고로 방을 사용하고 있다. [오석근 작가 제공]
56년동안 목포 번화로에서 일한 김병진(77) 씨가 한때 자신이 일했던 일본식 상가주택(적산가옥)을 바라보고 있다. 김씨가 일했던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몇 년 째 비어있다. 목포=김빛나 기자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국내편〉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헤럴드경제(목포)=김빛나 기자]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14일 오전 전남 목포 번화로. ‘번화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거리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백발의 노인 김병진(77) 씨는 56년째 매일 이 거리로 출근한다. 김씨는 번화로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한다. 김씨가 일하는 가게 맞은 편에는 한동안 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빨간색 벽돌 건물이 있었다. 김씨는 이날도 건물을 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초년생 시절 저 건물에서 일했다. 일본식 주택(적산가옥)인데, 일본인들이 떠나고 우리나라 사람이 전축(축음기) 가게를 운영했다. 직원으로 일했는데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며 “그리고 계속 주인이 바뀌다가 몇 년 전부터 비어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일했던 적산가옥은 국가등록문화재(근대문화재)다. 일제강점기에 목포 일대에서 활동한 상인 ‘모리타 센스케(守田千助)’가 소유했다. 당시에는 과자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 후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다. 일본인이 소유했던 기간보다 한국인 소유 기간이 더 길어졌다. 외벽에는 ‘OO마켓’이라는 한글이 적혀있다.

“적산가옥이 일제의 잔재라 하지만 목포 사람들의 역사가 담긴 건물이다. 다방면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김씨는 “청년들이 잘 꾸미면 될 것 같은데 목포 시에서 매입하고 싶어도 비싸서 못 산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적(敵)의 가옥’이라는 뜻을 가진 적산가옥은 대표적인 ‘불편한 근대문화재’로 꼽힌다. 일제 수탈의 잔재이기에 근대문화재 등록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목포에는 어두운 일제강점기 역사 이후, 목포 시민의 역사가 쌓인 가옥도 상당했다. 목포시의 인구가 줄고 도시가 쇠락하면서 적산가옥들은 역사를 품은 채 낡아가고 있었다.

한때 목포는 적산가옥으로 흥했던 도시다. 2010년대 후반에는 목포 부동산에 돈이 몰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유동 인구가 줄면서 역사의 흔적만 남은 채 낡아가는 적산가옥이 많아졌다. 그나마 목포 근현대역사관이 있는 거리는 문화의 거리로 바뀌었지만 원도심지였던 번화로는 ‘유령 거리’가 됐다.

한국의 현대사 담긴 적산가옥

전남 목포 번화로에 위치한 적산가옥.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나 한동안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 벽면이 훼손됐다. 목포=김빛나 기자
전남 목포 번화로에 위치한 적산가옥.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나 한동안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 벽면이 훼손됐다. 목포=김빛나 기자

그러면서 일부 적산가옥은 버려진 건물이 됐다. 김씨가 일했던 적산가옥에서 500m가 채 안 거리는 거리에 위치한 근대문화재 역시 사람이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가득했다. 연두색 벽돌은 페인트가 벗겨져 갈색 모습을 드러냈고, 내부도 공사 자재들이 있을 뿐 텅 비어있었다.

건물 건너편 가게에서 일하는 정여주(57) 씨는 “목포에 적산가옥이 많은데 이 건물이 제일 관리가 안 된 건물이 아닐까 싶다”며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이 되면서 그나마 번화로 사정이 나아졌다. 하지만 건물들을 정부에서 관리하면 좋을텐데 쉽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목포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 적산가옥이 많다. 조선 말인 1897년, 조선은 항구를 개방하고 무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립 지역에 일본인들이 하나둘 모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본격적으로 일본인이 몰려 일본인 마을이 형성됐다. 번화로부터 근현대역사관이 이어지는 거리에는 일본 상류층부터 상인까지 다양한 집들이 남아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거리 자체가 근대문화유산공간으로 지정됐다.

개인이 매입한 적산…관리 한계 있어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이선재(가명·50대) 씨가 매입한 적산가옥 내부. 일본식 가옥 특징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건물 활용이 어려워 이씨는 최근 주택을 부동산에 내놨다. 목포=김빛나 기자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이선재(가명·50대) 씨가 매입한 적산가옥 내부. 일본식 가옥 특징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건물 활용이 어려워 이씨는 최근 주택을 부동산에 내놨다. 목포=김빛나 기자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집이 보이는,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집이라 구매했어요. 어렸을 때 적산가옥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던 기억도 있어요. 일본식 집이지만 한국인의 집이 된 거죠.”

개인이 근대문화재를 매입해 사비를 들여 직접 관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선재(가명·50) 씨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2층짜리 적산가옥을 2010년대 후반 매입했다. 2층에는 일본식주택의 특징인 다다미 방(도코노마)이 그대로 남아있고, 이불을 넣는 상부장의 흔적도 남아있다. 동시에 80년대 한국식 집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건물 안에 펼쳐진 마당에는 장독대와 현관을 장식하는 한지 벽지가 있었고, 면적이 좁은 마루를 최대한 사용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이씨는 최근 건물 활용에 고민이 많아,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그는 “건물이 아름다워 일주일에 한두번씩 와서 청소하고 가꾼다.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고, 제가 직접 살지는 못한다”며 “하지만 이 집을 그대로 남기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근현대사 담긴 집…단순하게 봐선 안돼
사진작가 오석근의 〈적산 부산(釜山) 03〉.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위치한 일식 주택의 사진으로, 여전히 후스마(襖)와 다다미를 사용하고 있으며 중앙 상단에 가훈이 적힌 액자, 후면에 70년대 커튼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부지방의 적산가옥은 난방을 위해 집을 무리하게 변형한 중부지방의 적산가옥과는 그 변화상이 적다. [오석근 작가 제공]

목포 외 다른 지역 적산가옥도 한국인이 살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오석근 작가는 일본식 상가주택(적산가옥)에 담긴 한국인들의 삶을 포착한 작업을 이어왔다. 오 작가는 “적의 재산, 즉 뼈대는 일본가옥인데, 한국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집들이 있다”며 “예를 들어 인천 신흥동 주택의 경우 일본은 북향 집이 많은데 한국은 남향집을 선호해서 남향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전국에 흩어진 적산가옥은 많지만 실태조사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서동천 목포대 건축학과 교수는 “모든 적산가옥을 남기고 관리할 순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살면서 현대적 가치가 부여된 곳, 건물만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 등 실태조사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경우도 소유주의 의지로 가꿔야 하는데 일반인이 역사를 공부해서 복원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산가옥의 경우 소유주 문제 등으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일본인이 살던 집을 한국인이 물려받는 등 매입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현황 조사를 꺼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도 개인이 소유한 적산가옥을 보존하려 노력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 체계 내에 속해 있어 등록문화재 제도 운영 및 확장에 한계가 있다”며 “비록 적산가옥이 시작은 어두운 역사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다 생각해 근대문화재로 지정하고 소유자가 보존 요청을 하면 시급성 등을 따져서 수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적산가옥을 다룰 때 원형을 보존한다며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만을 보존하거나 철거하거나 이분법적인 생각을 한다”며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만은 답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쌓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잔재도 맞지만 한국인이 살아왔던 과정도 있다. 젠가 게임도 아니고 몇 가지만 쏙쏙 뺄 수는 없다. 혼재되는 역사를 반영하고,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줄 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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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헤럴드경제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역사적 논쟁 속에 사라지는 한국 근현대사 유적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본 기획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 : 김빛나 기자
팀 구성원 : 김빛나·김영철·박지영·박혜원 기자
지원 :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 전체 시리즈〉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2] 베를린편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 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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