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한 집 건너 폐가...부산 마을유산 3곳 빈민촌 됐다
뉴스종합| 2023-10-24 11:06
현재 일부만 남아있는 매축지마을 뒤편으로, 옛 매축지마을 부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부산=박혜원 기자

“공동화장실 요금을 거둬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손해야....” 지난 8월 28일 오전 11시께 찾은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이 군수 물자를 나르기 위해 부산항과 가까운 지역을 매립한 뒤, 6·25 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거주한 동네다. 이날 보행기를 끌고 마을 골목을 지나던 통장 신동철(81)씨 손에는 공동화장실 이용 요금을 취합하기 위해 주민 명단을 정리한 종이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전쟁 당시부터 이곳에 거주했다는 신씨는 “예전에야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노인이 다 돼서 자꾸 떠나기만 하고, 없어질 동네”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재 매축지마을은 사실상 소멸 상태다. 낙후한 상태로 방치되다 1990년대부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원주민 대부분이 이주한 영향이 크다. 부산 동구청에 따르면 한때 3만여 명에 달했던 매축지마을 인구 수는 이달 기준 211명으로 줄었다. 대부분 가구가 개인 화장실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데다, 그나마 남아있던 주민들은 재개발에 쫓겨났다.

오늘날 이곳에선 주민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항 부두와 인접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군수물자를 옮기기 위해 막사와 마구간을 지었고, 6·25 전쟁에는 피란민들이 마구간을 칸칸이 나눠 주거 공간으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역사와 전쟁의 아픔이 동시에 남아있는 곳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 데다 수차례 대형 화재까지 발생해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8개 통(統) 대부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6통 일부에만 주민이 남아있다. 이날 기자가 살펴본 50여m 골목에 밀집한 12가구 중 폐가만 7곳에 달했다.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에 지난 6월 막사 형태를 복원한커뮤니티 센터가 들어섰지만, 뒤편으로는 여전히 폐가가 늘어서 있다. 부산=박혜원 기자

6·25 전쟁 당시 ‘피란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의 역사적 유적들이 훼손되고 있다. 매축지마을 외에도, 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살아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미동 비석마을과 우암동 소막마을 역시 거주민이 고령화하면서 폐가가 즐비한 사실상의 ‘슬럼’ 상태가 됐다. 특히 비석마을과 소막마을의 경우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음에도 지자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는 “부산과 같은 피란수도 형태의 문화유산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형태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곳은 현재 부산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아미동(비석마을)과 우암동(소막마을) 노후 건축물 비율은 각각 90.9%, 93.8%에 달한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해설사 공경식(73)씨는 “4평 남짓했던 공간에 층을 나눠가며 10명이 모여 살았다. 피란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며 “보존 노력이 없진 않았지만, 주택들 소유자들의 거부 문제로 노후하고 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소막마을은 매축지마을에 이어 재개발 압력에 사라질 위험이 큰 곳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부산은 우암동 일대 2만4000㎡ 내 주택 등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하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주거시설 일대를 소유한 24세대 중 19세대가 반대했다.

아미동에 위치한 비석마을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피란민들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주거지를 조성해 현재까지도 묘지에 썼던 비석 등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다. 지난해 부산시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됐지만 주민들이 고령화하면서 인적이 극히 드물어졌다. 지난 2017년 도시재생사업으로 공동 빨래방, 주택 개조사업 등이 이뤄지고 2021년 주택 9채를 리모델링해 박물관을 조성하는 등의 시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입 인구가 없는 데다 관광객 역시 드물어 가파른 골목 곳곳에 폐가가 적지 않았다. 이곳 역시 2019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만 38%에 이르는 등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산 보존을 위한 공공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후 지자체에서 별도 비용을 들여 마을을 관리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으나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지역을 공공이 집중적으로 매입해 생활관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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