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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규제에 막혀 3만톤 배터리 계약 날렸다, 중국이 가져가”…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 [비즈360]
뉴스종합| 2023-11-09 12:01
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이사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차전지 산업 관련 새로운 먹거리로 재활용 사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각종 규제 탓에 글로벌 경쟁사들과 제대로 된 경쟁조차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국가별 자원보호정책, 미중 무역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대외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이차전지 산업의 핵심광물 수급이 불안정하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은 이차전지 재활용 산업을 통한 안정적인 원료 공급망 확보가 절실한 이유이자 관련 규제가 개혁돼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통해 “이차전지 산업 관련 새로운 먹거리로 재활용 사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는 각종 규제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코프로씨엔지는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하는 에코프로그룹 계열사로 지난 2020년 3월 설립됐다. 박 대표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 이차전지 산업의 새 먹거리인 재활용 사업에 관심을 갖고, 해당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반면 우리 기업들은 해외 원료를 수입하는 단계 때부터 각종 규제 탓에 글로벌 기업들과 제대로 된 경쟁조차 못하는 실정”이라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규제·제도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 ‘이차전지 재활용 사업’은 아직은 생소한 분야다.

▶이차전지 재활용산업은 수명이 다한 폐배터리 또는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공정 스크랩에서 이차전지 필수광물인 니켈, 코발트, 망간, 리튬 등 희유금속을 회수해 원료로 공급하는 산업이다.

희유금속 혼합물인 블랙파우더(폐배터리 전처리 생산물)를 만드는 전처리 공정과 블랙파우더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후처리공정으로 크게 나뉘는데 에코프로씨엔지는 두 가지 공정 분야에 모두 진출해 있다.

이차전지 산업의 핵심광물은 중국 등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이차전지 재활용산업은 4차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꼽힌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전동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전기차 배터리 처리 문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성장 잠재력도 상당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오는 2040년 574억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이사. 임세준 기자

- 우리 기업들의 시장 진입에 가장 큰 제약이 되는 규제는.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 역시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재활용대상인 원료와 관련한 각종 규제 탓에 해외사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이차전지 재활용대상 원료는 폐기물로 구분돼 보관부터 운반, 처리에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배터리 공정스크랩은 지정폐기물로 구분돼 있어 폐기물관리법의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폐기물관리법 관리기준을 적용해 사업장 내 허가받은 수량 이내만 보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이차전지 재활용 업체 보관량은 1000~2000t(톤)으로 물량이 초과할 경우 이를 적정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같은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폐기물 관리 부처인 환경부는 지난 8월 이차전지 재활용 대상 폐기물에 대해 처리 기한을 기존 30일에서 180일로 완화했지만, ‘처리시설 내부에만 보관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 제약과 더불어 단기간에 보관시설을 확충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광물자원공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5대 핵심 광물로 니켈과 코발트, 망간, 리튬, 텅스텐을 지정했다. 배터리 소재 산업의 핵심 소재들이지만, 관련 규제로 비축을 할 수 없는 실정인 셈이다.

유해성이 낮고, 유가성(금전적 가치)이 높은 폐기물은 자원순환법에 따라 순환자원으로 인증받을 수 있는 절차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폐기물’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지정폐기물’로 분류된 배터리 공정스크랩, 폐양극재 등은 순환자원으로 신청조차 할 수 없다.

폐기물관리법의 규제 목적은 ‘폐기물 방치 억제, 지역환경 보전’이다. 이차전지 재활용 대상 폐기물은 고가의 비용을 내고 구매하는 기업의 자산이어서 방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제 규제와 관련해 피해를 본 사례가 있는지.

▶최근 1년 새 각종 규제로 해외 경쟁사들에 공급망을 내준 사례도 많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미국 유명 전기차 제조사인 A사가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 3만t 공급 제안을 했지만, 내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캐파(능력)가 800~1000t 수준으로, 이를 초과하는 물량을 외부에서 보관할 수 없는 구조다 보니 원료 수급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폐기물 보관 기한인 180일 안에 수만t의 원료를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을 새로 짓기란 불가능하다. A사가 제시한 물량은 고스란히 중국 업체로 넘어갔다.

이외에도 현재 일본의 B사와 BP(전극소재용 금속산화물)를 수입하기 위해 양사 간 협의 중인데, 양국 간 다른 ‘폐기물 분류 기준’ 탓에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BP를 폐기물로 보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지정폐기물이다. 때문에 수입동의 없이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석회 에코프로씨엔지 대표이사. 임세준 기자

- 미국, 중국, EU 등 주요 경쟁 국가에서의 상황은 어떤지.

▶전기차 보급의 확대와 더불어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주요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폐배터리를 전략물자로 인지하고, 해당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은 정부 주도로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분야 선점을 위해 가장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배터리 이력 관리와 함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시행하고 있으며, 베이징·상하이를 포함한 17개 지역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폐배터리에서 핵심소재 회수를 높이기 위해 니켈, 코발트, 망간은 98%, 리튬 85%, 기타 희소금속은 97%를 회수 목표치로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 또한 재활용 촉진을 위해 전기 배터리의 규격, 등록, 회수, 포장, 운송, 해체 등 각 단계별 국가표준을 제정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 내 배터리 재활용 등록 기업 수는 이미 4만개를 넘어섰다.

EU는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유럽에서 거래되는 모든 종류의 배터리 디자인, 생산, 폐기 등에 대한 규정을 담은 새 배터리법을 채택했다. 아울러 전기차 배터리 주요 원료인 리튬과 코발트 등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 폐배터리 원료 회수 최소 기준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르면 2031년부터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의 법이 배터리의 안정성과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EU의 배터리법은 코발트·리튬·니켈 등 핵심광물의 함유량을 표기하고,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등 배터리의 자원순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EU와 비교해 전기차 폐배터리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과 관련 규정의 범위와 복잡성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성장 모멘텀이 가속화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초당적 기반시설법(BIL)을 제정해 배터리 재활용관련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로 연구개발(R&D)과 공장건립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점은.

▶업계에서는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소재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배터리 재활용 산업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원순환 활성화를 위해 원료확보와 자원화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순환자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원료의 보관과 처리에 대한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방전셀을 제외한 스택, 플레이트, 폐양극재 등은 전해액이 없는 고체형의 원료로써 유해성이나 누출 가능성이 없는 안정된 원료다. 폐배터리 원료에 대해 폭발성, 산화성, 자연발화성, 금수성, 인화성, 부식성, 용출독성 등 유해성 요인에 대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 외부보관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향후 전기차 공급량 정상화를 대비해 원료(공정스크랩)의 확보는 국내 기업의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원료의 보관과 처리에 대한 제약이 완화될 수 있도록 순환자원으로서 인정되거나 외부 보관 허용이 승인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해결 과제다.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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