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일·자폭드론에 곳곳 피해…'우크라 저항의지 꺾으려는 노림수' 관측
나토 회원국 폴란드 영공에 러 미사일 침범하면서 한때 긴장고조
유엔 사무총장 "국제인도법 위반…용납될 수 없는 일" 규탄
바이든 "푸틴, 안 변했다"…시들해지던 서방 군사원조 탄력 받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2023년의 끝이 이틀여 앞으로 다가온 2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등을 겨냥해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감행했다.
미사일만 무려 120여발이 동원된 공세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러시아군이 최전선이 아닌 군사적 가치가 크지 않은 후방 도시들을 노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성명을 내고 수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공습으로 최소 30명이 숨지고 16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에서 건물 잔해 아래에 갇힌 생존자를 구조 중이라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러시아군이 폭격기 18대 등을 동원해 미사일 122발을 쏟아냈으며 자폭 드론(무인기)도 36대를 날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미사일 87발과 드론 27대를 격추했으나 나머지는 막지 못해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공격을 받은 건물 중에는 학교와 산부인과 병원, 쇼핑센터, 아파트 등 명백한 민간시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말했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의 비행장과 탄약·유류 저장고 등 군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고정밀 무기와 무인기를 활용한 대규모 폭격을 진행했다"면서 모든 목표물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이날 발생한 민간인 피해가 모두 우크라이나 측이 방공 체계를 잘못 운용한 탓에 생긴 사고이며 러시아군은 민간 시설을 겨냥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는 국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작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기습적으로 침공한 이후 이미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의 민간시설을 겨냥하거나, 민간인 피해를 고려 않고 정밀도가 떨어지는 무기를 마구 쏘아댄 전력이 있어서다.
예컨대 러시아는 작년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역의 전력 기반시설을 표적 공습해 정전을 유발, 우크라이나인들이 추위와 공포에 시달리게 한 바 있다.
이후 서방이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대공 방어 체계를 대폭 강화했지만, 이날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선 전력 기반시설이 망가져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했다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밝혔다.
OCHA는 "어마어마한 공습으로 수백만이 겨울밤에 대피소로 피해야 했으며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에서 파괴와 죽음이 잇따랐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러시아 미사일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접경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영공을 침범해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치에이 클리시 폴란드군 작전사령관은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 중 하나가 폴란드 영공에 들어왔다가 약 3분 만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안보기관 수장들이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도 통화했다. 폴란드 외무부는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등의 요구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셌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AP 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회의에서 모하메드 키아리 유엔 사무차장보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들을 겨냥한 오늘의 끔찍한 공격을 가능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명백히 규탄한다"면서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용납될 수 없으며 즉각 멈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은 회의가 끝난 뒤에도 러시아에 대한 규탄을 이어갔다.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영국 대사는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동력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필사적이고 헛된 시도였다"면서 "그들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최근 시들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다시 힘이 실릴 조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극명히 드러났다"면서 공화당에 발목이 잡혀 의회에 계류 중인 우크라이나 원조 추가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그랜트 섑스 영국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공 미사일 수백발을 보내기로 했다면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방어와 서방의 의지를 시험하면서 패배의 문턱에서 승리를 거머쥐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세밑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서도 우크라이나군에 입힌 손실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 까닭에 일각에선 이번 공격이 의도적으로 후방 도시들을 노려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거나 석달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대선을 의식한 작전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내년 3월 17일 열리는 대선에서 5선에 도전하는 푸틴 대통령은 이달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한 서류를 제출했고 현재는 러시아 전역에서 무소속 출마에 필요한 유권자 30만명의 지지서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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