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기름 한 방울 안 나던 나라에서” 40년 도전 끝에 일군 ‘산유 기업’ 기적 [그 회사 어때?]
뉴스종합| 2023-12-31 09:36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중국 17/03 광구에 설치된 SK 원유 생산 플랫폼. [SK이노베이션 제공]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석유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환경오염 주범으로 꼽히고 있지만 석유가 없다면 공장은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습니다. 국제 경기는 유가 향방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월드컵, 엑스포 등 대규모 국제 행사를 연이어 유치하게 된 것도 석유를 통해 어마어마한 자본을 구축했기 때문이죠.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은 우리나라는 국제 석유 시장에서 항상 ‘을’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석유개발 사업에 뛰어든 회사가 있으니 바로 ‘SK어스온’입니다.

“유전 없는 우리도 산유국 될 수 있다”
최종현 SK 선대회장(가운데)이 1988년 북예멘 마리브 광구 개발원유 도입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어스온 모태는 1982년에 설립된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자원기획실입니다. SK어스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이 석유개발(E&P) 사업을 물적분할하면서 출범됐습니다.

석유개발 사업은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우선 광구에서의 원유 탐사 성공률은 5% 미만에 불과합니다. 광구에서 원유가 발견되더라도 생산 과정에서 수익성이 나쁘다고 판단되면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기업이 쏟아부어야 할 자금만 수천억원이 넘습니다.

SK가 리스크가 높은 사업에 뛰어든 배경에는 에너지 자립에 대한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의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70년대 초반 발생한 오일쇼크 당시 석유 부족 문제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산업 현장에 쓰일 석유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죠.

이때 최종현 선대회장은 석유개발 사업을 통해 원유를 확보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당시 SK 구성원들은 사업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전이 없는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최종현·최태원 “실패해도 문책하지 말라”
최태원(오른쪽) SK 회장이 2007년 페루 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당시 페루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가 유전개발 투자로 원유 생산에 처음 성공한 건 1987년입니다. 석유개발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거둔 성과입니다. SK는 1984년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원유 매장을 확인한 지 약 40개월 만에 원유를 생산했습니다.

첫 성과 이후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던 SK어스온은 오히려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1989년부터 4년 동안 진행한 미얀마 C광구의 유전 개발에 SK는 무려 7447만달러(약 10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유전 개발에 실패, SK어스온은 미얀마 유전개발 사업에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이후 북미, 콜롬비아 등에서 진행된 사업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최종현 선대회장, 최태원 현 SK 회장은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따로 묻지 않았습니다. 리스크가 큰 사업에서는 질책이 아닌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최종현 선대회장은 미얀마에서의 실패 이후 “개발 사업은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한 사람을 문책해서는 안 된고 실패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태원 회장 또한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책임을 묻기보다는 그 성과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격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석유개발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2007년에는 삼림지대에 있는 페루 카미시아 88광구를 직접 찾아 현장 관계자들을 격려했습니다.

40년 만에 원유 탐사부터 생산까지 성공
SK어스온이 올해 11월 남중국해 북동부 해상에 있는 17/03 광구에서 생산한 원유를 수상·수중 호스를 통해 유조선에 선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대를 이은 회장들의 신뢰와 지지에 SK어스온은 올해 기적 같은 성과를 쏘아 올렸습니다. 지난 9월 SK어스온은 남중국해 북동부 해상에 있는 17/03광구 내 LF(Lufeng·루펑) 12-3 유전에서 원유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약 300㎞ 떨어진 17/03광구는 여의도 15배에 이르는 45㎢(약 1350만평) 규모입니다. 하루 생산량은 최대 2만9500배럴로 국내 하루 석유 소비량(250만배럴)의 1%를 웃돕니다. 1983년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자원 개발에 뛰어들어 40년간 석유 개발 사업을 진행해온 SK가 원유 탐사부터 개발·생산까지 성공한 첫 사례입니다.

이후 11월에는 베트남 남동부 해상에 있는 16-2 광구(사진)에서 탐사정 시추를 통해 원유층을 발견했습니다. 산출시험(DST)을 시행한 결과 첫번째 저류층(원유·천연가스가 지하에 모여 쌓여 있는 층) 구간에서 일 생산량 최대 약 4700배럴 원유 및 7.4 MMscf (100만 표준 입방피트)의 가스 생산 산출에 성공했습니다. SK어스온이 관련 사업을 시작한 후 4년 만의 성과입니다.

SK어스온은 현재까지 총 8개 국가에서 10개 광구를 운영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10개 광구 생산량은 일일 약 5만2000배럴(석유 환산 기준)입니다.

명성 SK어스온 사장이 올해 10월에 열린 하반기 전략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어스온은 최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사업에도 나섰습니다. CCS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 저장소로 주입하는 만큼 대표적인 탈탄소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는 글로벌 CCS 시장 규모는 2020년 41억달러(약 5조원)에서 2026년 94억달러(약 12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CCS는 석유개발 사업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SK어스온에 또 다른 기회입니다. CCS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저장에 적합한 지역을 찾은 이후 이산화탄소 저장용량을 평가,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누출 위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이산화탄소 저장에 적합한 해저지층은 해저유전과 비슷합니다. CCS 사업 강화를 위해 SK어스온은 국내외 다양한 기관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SK어스온(earthon) 사명은 지구·땅을 뜻하는 ‘earth’와 계속을 의미하는 ‘on’의 합성어입니다. 명성 SK어스온 사장은 올해 10월 열린 하반기 전략 워크숍에서 “앞으로 탄소에서 그린으로 파이낸셜 스토리 실행을 위한 석유 개발과 그린 영역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중점적으로 고민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yeongda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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