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15일(현지 시각) 삼성전자에 64억달러(약 9조원)의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이 향후 10년간 미국에 400억달러(약 55조원) 이상 투자하는 데 대한 보조금이다. 앞서 거론되던 60억달러 보다 금액이 늘었다. 보조금 규모만 놓고 보면 인텔, TSMC에 이어 세 번째지만 투자액 대비 보조금 비율에선 14%로 인텔(8.5%), TSMC(10.2%)보다 월등히 높다. 그만큼 삼성의 기술력과 투자의지,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수백조원에 이르는 반도체 투자유치는 속전속결로 이뤄진 점에서 우선 놀랍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반도체 자국주의’를 선언한 이래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일명 칩스법)을 제정, 보조금 527억달러(약 73조원)를 내걸고 삼성과 TSMC,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487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제조 시설 하나 없던 미국에 인텔·삼성전자·TSMC 등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설과 첨단 패키징 공장까지 모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반도체 생태계가 완성된 셈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이 삼성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 지급을 발표하면서 “정말 흥분된다”고 말한 게 과장이 아니다. 옥수수밭이 최첨단 반도체 단지로 바뀌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게다가 일자리가 2만여개 생기니 주변 지역과 상권에 활기가 도는 게 당연하다.
‘쩐(錢)의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각국이 반도체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시대 경제·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이미 TSMC 유치에 수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보조금 한 푼 없이 세액 공제도 미국·일본에 비해 떨어진다. 기업이 투자 때 받는 인센티브가 미국과 일본의 5분의 1수준 정도다. 세액공제 혜택도 몇년 뒤 기업이 이익을 내는 시점에 받을 수 있는 반면 미국은 바로 받을 수 있다. 이익을 못내면 못받는다는 얘기다. 그마저도 올해말에 사라진다. 투자가 적기에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반도체 싸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반도체 강국’이란 말이 이젠 무색하다. 중국이 범용반도체에서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원천기술과 생산시설까지 갖추게 된 미국은 첨단 반도체 시장의 50%를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일본도 반도체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는데 한국만 뒷짐지고 있다. 여야가 총선용으로 반도체 지원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느새 조용하다. 더 늦기 전에 직·간접 지원을 늘리고 규제도 풀어 기업이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 타령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