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반도체 공장 1개동 신축에 3600페이지 보고서 작성…불필요한 규제에 한숨만”
뉴스종합| 2024-06-05 11:00
국내 한 공사장 작업 현장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 반도체 기업 A사는 공장 1개동 신축을 위해 연간 47건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공장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공정안전보고서(PSM)’의 필요 분량은 약 3600 페이지에 달한다. 반도체 공장 내부(클린룸)에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고, 주요 장비들도 이미 국제 안전인증(SEMI)을 획득한 것들이다. 하지만 대형화학공장 설립에 적합한 기준인 공정안전보고서 제도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까지 획일 적용돼, 불필요한 규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는 안전보건·환경 분야 규제개선 과제 총 120건을 발굴해 고용노동부·환경부·국무조정실 등 관련 부처에 5일 건의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구체적으로 산업안전 분야에서 76건, 산업보건 분야에서는 19건, 환경 분야에서는 25건의 분야별 규제 개선과제를 담았다.

주요 과제로는 ▷중대재해 발생 후 작업중지 해제절차 ▷업종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공정안전보고서 제도 ▷원하청 간 혼란과 중복업무를 유발하는 위험성평가 규정 ▷안전보건교육 실효성을 저해하는 과도한 교육시간 ▷사실상 근로자 보호를 저해하는 중량물 취급작업 규제 ▷모호한 밀폐공간 정의 등이 포함됐다.

작업중지 해제절차는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경우 이를 해제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말한다. 현재는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해제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작업중지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해당 산업 공급망에 차질을 빚어 업계 전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작업중지 해제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최근 3년 기준 40.5일에 달했다. 경총은 “작업중지 해제까지 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작업중지 명령을 내린 감독관이 직접 해제 결정을 신속히 내리도록 절차를 개선할 것을 정치권 등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공장 내 생산설비의 경우 국제 안전기준에 따라 제작·인증된 장비로서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철저한 안전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만큼, 업종 특성 및 안전관리 수준을 고려하여 공정안전보고서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외에도 경총은 사업장 재해예방을 위한 핵심 안전활동인 위험성평가는 원하청 간 실시주체가 모호하여 혼란스럽고, 안전보건교육은 교육시간이 매우 과다하여 노사 모두가 부담을 느끼고 있으므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이번 정부 건의를 통해 정치권에도 경영계 전반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전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안전보건·환경 분야의 규제는 현장과 맞지 않거나 과도할 경우, 근로자 보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기업의 법령 준수 노력을 더욱 어렵게 하여 사고예방에도 역행할 수 있다”면서 “안전보건·환경 분야의 규제개혁은 단순히 기업부담을 경감시키는 차원을 넘어, 근로자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국가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필수과제”라고 덧붙였다.

zzz@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