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상 이끈 하마스 1인자 피살
  중재국 카타르 “협상 상대 암살하면 중재가 성공하겠나” 지적

하마스의 대표자였던 하나예를 추모하는 인파. [AP]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31일(현지시간) 암살되면서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위한 휴전 협상에 암운이 드리웠다.

휴전 협상은 사실상 끝났다는 전망이 나오는 건 하니예의 생전 역할 때문이었다. 그는 카타르에 주로 머물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크고 작은 분쟁 때마다 협상역을 담당해왔다.

지난 2021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11일 전쟁' 이후 이집트의 중재로 진행된 휴전 협상에 관여한 것도 하니예였다. 이스라엘이 암살 작전을 벌였다면 휴전 협상 상대방의 대표를 암살한 것이다.

협상 중재국인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한쪽이 다른 쪽의 협상 상대를 암살하면 어떻게 중재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하면서 하니예 암살로 휴전 협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 전쟁 양상과 관련해 극적인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며 “절실한 휴전의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진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0개월간 번번이 결렬됐지만 최근 휴전 협상은 활기를 띠는 분위기였음을 감안했을 때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 28일까지만 해도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 카타르의 고위 당국자들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자지구 전쟁 휴전안을 논의해왔다.

협상은 몇몇 핵심 쟁점으로 교착과 진전을 반복했지만 중재국의 노력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에 암살 작전의 주체로 지목되는 이스라엘은 애초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휴전 협상이 진전 없는 상황에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일갈했다.

하니예의 갑작스러운 피살로 하마스에선 강경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마스는 암살 주체로 휴전 상대인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하마스는 이날 낸 성명에서 “우리의 지도자 하니예가 시온주의자(이스라엘)의 급습으로 테헤란의 숙소에서 순교했다”고 밝혔고, 하마스 정치국의 고위 인사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그들(이스라엘)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번 암살이 벌어진 장소가 이란 수도 테헤란이라는 점이 휴전 협상엔 더욱 부정적인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하니예의 암살에 대해 ‘의무적인 가혹한 보복’을 지시한 만큼 이란은 협상 테이블을 무르고 저항의 축을 움직여 이스라엘을 동시다발로 군사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자지라 방송은 “실용주의자인 하니예의 사망으로 이제 하마스의 강경파가 주요 의사 결정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휴전 협상이 추동력을 갖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하니예의 암살로 이스라엘이 강조하던 전쟁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달성됐다는 점에서 국내적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종전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간 휴전을 하더라도 하마스 제거, 인질 석방, 가자지구로부터의 위협 종식 등의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전투 재개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피터 리케츠 영국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BBC 방송에 “하마스 지도부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작전을 종료할 정치적 여지가 생겼다”면서도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할 가능성이 작기에 중동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