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광장] 귀농귀촌, 그 ‘진실의 이정표’는?
뉴스종합| 2024-10-11 11:21

2010년 시작된 귀농·귀촌 붐은 2022년 이후 눈에 띄게 시들해졌다. 십수년이 흐르면서 농업·농촌에 걸었던 기대와 환상이 깨진 탓이다.

그런데도 “농촌이 너무 좋아요, 빨리 오세요”를 외치는 ‘호객 이정표’와 “농업은 블루오션입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미혹의 이정표’가 여전하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은 이제 ‘진실의 이정표’를 분별해 따라가야 한다.

▶가능하다면 도농 양다리 걸치기=법과 제도로 보면 귀농·귀촌이란 도시(행정구역상 동 지역)에서 농촌(읍·면)으로 주민등록 주소를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 주소를 그대로 두고서도 5도2촌, 4도3촌 등 얼마든지 전원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 올해 정부가 내놓은 ‘세컨드 홈’ ‘체류형 쉼터’ 등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도시와 단절 아닌 도시와 함께=도농 양다리 걸치기가 어려워 아예 농촌으로 이주한다고 해도 도시와 단절하는 것은 안 된다. 도시가 제공하는 경제(일자리)·쇼핑·문화·교육·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농촌 입지, 즉 도농 상생(공생)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경기도가 압도적인 귀촌 1번지인 이유다. 오지로 가는 ‘나는 자연인’은 금물.

▶전원명당은 편리한 교통망+청정 자연=도농 상생이 가능한 농촌 입지는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을 이용한 도시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이때 도시접근성은 물리적 거리보다는 시간거리가 빠른 곳이 포인트.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등의 나들목(IC) 주변이나 KTX(고속철도)·전철 등 역세권 주변이 바로 그곳이다. 여기에 청정한 자연환경을 갖추면 최고의 전원명당이다.

▶행정경계(구역)를 파괴하라=귀농·귀촌 입지는 먼저 숲을 보고 나무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숲은 연계 가능한 도시생활권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충북 괴산군으로 가고자 한다면 이웃한 대도시 청주시나 인구 20만명이 넘는 충주시를 놓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도시 기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괴산 내 입지를 선택하는 게 맞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물과 공기는 필수=농촌에 살면서도 먹는 물은 생수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냄새와 먼지에 시달리기도 한다. 산촌이라 할지라도 깨끗한 물과 공기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농촌마을마다 축사·농약 살포 등의 갈등이 잦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청정 터를 찾아내야 한다.

▶은퇴 후 귀농은 ‘돈보다는 건강’=매스컴에선 성공사례를 쏟아내지만 귀농해 부자농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전국 농가 중 1억원 이상 농업 매출을 올리는 곳은 4% 안팎에 불과하다. 또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귀농가구 중 절반가량은 돈보다는 짓기 쉬운 작목을 선택한다. 은퇴 후 귀농은 ‘반(半)자급, 건강먹거리, 치유농사’가 적합하다.

▶자연과 벗하는 ‘시간부자’되기=은퇴한 귀농·귀촌인 중에는 돈과 명예를 좇아 도시보다 더 바쁘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자연 속에서 안분지족하겠다는 초심은 흐려지고 지역사회와 사람관계에 치여 힘들어한다. 돈 아닌 시간부자가 돼 늘 자연과 벗하면 ‘로망’이라는 전원생활의 힐링과 행복이 비로소 내 것이 된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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