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노숙자 죽인 CCTV 속 범죄자, 그런데 내 아이라면… [요즘 영화]
라이프| 2024-10-14 13:32
영화 ‘보통의 가족’. [하이브미디어코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 영화는 ‘밥 세 번 먹으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세 장면 찍는 데 진이 다 빠지는 줄 알았어요.”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김희애가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한 말 그대로다. 영화는 두 쌍의 부부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세 차례에 걸친 식사 장면으로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물들의 제스처나 말의 뉘앙스는 복잡 미묘하게 변주되며 극강의 관계항을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고 나면 김희애가 괜히 혀를 내둘렀던 게 아니었구나 싶다.

멜로 영화의 거장 허진호 감독의 첫 스릴러 영화 ‘보통의 가족’이 오는 16일 개봉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걸작을 만든 허 감독이 여태껏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를 영화 전면에 배치했다. 가족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는 시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 ‘보통의 가족’.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통의 가족’. [하이브미디어코프]

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다.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이 노숙자를 때려 숨지게 했다. 그런데 사건 현장이 담긴 CCTV 저화질 영상 속 범죄자 중 하나가 한눈에 봐도 직감적으로 내 아이다. ‘만약 당신이 아이의 부모라면?’ 여기까지가 대략 러닝타임 한 시간 남짓. 영화는 매사 완벽해 보였던 두 가족을 둘러싼 갈등을 고조시키며 두 번째 막을 준비한다.

영화는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짜임새 있는 서사에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력이 더해져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흠잡을 곳 없는 네 인물들의 입장이 저마다 흔들리며 교차하는 장면마다 대단한 흡입력을 발휘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딜레마 앞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이들의 찌질한 구석은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치 않는 변호사(설경구 분),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장동건 분), 자녀 교육부터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김희애 분),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한 어린 나이의 주부(수현 분) 등 인물마다 자신만의 ‘정상성 궤도’를 따르며 강박적으로 보통의 가족을 자처한 이들이다.

영화 ‘보통의 가족’.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통의 가족’.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는 자녀의 범죄를 덮어주거나 경찰에 자수하려 할수록 우스꽝스러워지는, 부조리극 주인공 같은 ‘부모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신념과 본능 사이에서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지 서서히 드러낸다. 자녀의 자백을 강요한 부모가 끝내 범죄의 편에 서게 되는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장동건은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들이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들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현실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며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는 그가 이번 영화에서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연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장면도 많았다. 극중 김희애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세요”라고 지적하거나 설경구가 “흥부야”하고 동생을 부르는 연기는 원래 대본에 없었다.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연출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허 감독은 “그 순간, 그 공간, 그 공기에서만 딱 나오는 것이 있다”며 “내가 얘기한 대로 배우가 하지 않을 때 참 좋다”고 말했다.

정녕 무엇이 ‘보통 가족’인지 다각도로 묻는 이 영화는 제29회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지난 11일 폐막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19개에 달하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았다. 러닝타임 109분.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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