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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2000년대 이후 음악은 죽었다…우리 노래가 세대간 매개체 되길”
라이프| 2024-10-17 09:35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CJ아지트 광흥창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2집 35주년 기념 '35th Anniversary 2024 MIX' 발매 기념 음감회에서 음반 수록곡을 재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명곡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이들지 않는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어느덧 전설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청춘’이다. 누군가는 잊었고, 누군가는 빼앗겼던 꿈을 이야기했고, ‘하루 또 하루’가 가고 와도 그리웠던 시절을 노래했다. 깊은 목소리는 35년의 시간을 거슬러 어느 시절에 머물다가도, 다시 그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삶을 읊조린다.

“2000년대 이후 음악은 죽었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근원은 과거에 있어요. 이제는 사라져버린,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다 흘러가버린 것들을 복원하고 그 가치를 아는 장인급의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과거의 것을 재구성했어요.”

“음악은 죽고, 제작자는 살아있다”고 말하는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은 시간을 건너 ‘음악의 근원’을 다시 꺼냈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35년 전 봄여름가을겨울의 정규 2집을 새로운 시대의 음악으로 재소환했다.

김종진은 17일 올해로 발매 35주년을 맞는 두 번째 정규앨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의 2024년 버전 믹싱 음원의 공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이 음악이 부모와 자녀 세대를 연결하고 이해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89년 발매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정규 2집은 타이틀곡 ‘어떤이의 꿈’을 비롯해 ‘내품에 안기어’,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 등 밴드의 대표곡을 다수 포함,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음반이다. 대중적 성취는 물론 음악적 예술성까지 두루 인정받은 역작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앨범이 나왔을 때 이문세 앨범이 레코드 가게 (판매) 1위였다.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이 그 앨범을 이기고 1위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며 “연주곡 ‘못다한 내 마음을…’은 직장인 밴드를 한 경험이 있다면 연주해보지 않은 분이 없을 만큼 사랑받았다”고 했다.

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던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김종진은 “쌀쌀한 가을 버스정류정 앞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이 나왔다”며 “뮤직박스 차트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올라있었고, ‘어떤이의 꿈’은 1위는 못했지만 나이트클럽에서 많이 들렸다”고 했다. 음반의 성공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은 금강제화 랜드로바의 모델로 발탁, 국내 최초로 ‘억대 광고’도 찍었고 광고 대상까지 받았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연합]

이번 믹싱은 앨범 작업에 사용한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를 바탕으로 음악을 새로 수선하는 작업이었다. 장장 석 달간 요즘 음악보다 더 ‘힙’하게 들릴 수 있도록 작업했다. 그는 “믹스의 기준은 과거의 음악을 쓰되, 수선해서 지금 들어도 그 어떤 음악에도 뒤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힙해 힙스터들이 ‘좋은 음악’이라고 추천할 정도로 만드는 것에 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음악에 담긴 에센스를 간직하며 모든 세대가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예전부터 극상의 음질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음악 애호가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도구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선명하고 깨끗한 음악에 악기 하나하나가 생동감을 더한 만큼 드러머 고(故) 전태관의 소리만 따라가면 드럼 소리가 생생히 떠오를 정도라고 했다. 김종진은 “마스터 테이프를 풀어 새로 믹싱하는 작업은 타산이 맞지 않아 앞으로도 접하기 힘든 작업”이라며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아니면 이런 작업을 하기 어렵다”며 최상의 품질을 자신했다.

당시 발매한 봄여름가을겨울의 2집 앨범 커버에는 전태관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한국 대표 화가 서도호의 작품을 넣었다. 김종진은 앞으로 서도호 작가와의 협업 계획을 구상 중이다. 그는 “대중음악과 수집 예술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겨버렸다”며 “음악을 들으시는 분 중에서도 돈을 써서 가치를 올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을 위해 미술계와 대중음악계가 협업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오랜시간 함께한 음악 지기이자 절친인 전태관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올해로 6년 째다. 그는 2018년 12월 오랜 시간 암 투병을 해오다 세상을 떠났다. 김종진은 “전태관 씨가 그렇게 덜렁이었다”며 “녹음을 시작하면 미리 녹음 버튼을 눌러놓는데, 자리를 찾아가다 부딪혀서 피나는 일이 일상 다반사였다. 무척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진은 2집 앨범을 시작으로 5집 앨범도 새로운 시대의 버전으로 믹싱할 계획이다. 그는 “5집 앨범은 LP로만 극소량 발매돼 중고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그래선지 다시 듣고 싶다는 요청도 많다”고 했다. 1집 앨범도 새롭게 믹싱하고 싶었으나, 녹음한 마스터 테이프를 가수 한영애가 자신의 앨범으로 덮어씌워 믹싱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최상의 사운드로 다시 태어난 이 음악들을 다시 내놓는 김종진의 바람은 “음악으로 세대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남녀노소가 다 똑같은 음악을 들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같은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가 됐다”며 “우리 음악을 엄마와 아들, 아들과 딸이 함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들으며 ‘우리는 이런 음악을 들었는데 너희도 들을만 하니?’, ‘우린 이런 음악 들었어. 좋지 않냐? 노랫말도 멋지고 연주 편곡도, 사운드도 죽이지? 우리 때 이렇게 멋있는 음악이 있었어’라며 대화가 이어지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또 “이 작업이 젊은 세대가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을 즐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그동안 일관되게 ’봄여름가을겨울류‘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젊은 세대의 청취자들도 어느 구절만 들어도 ’이건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이라고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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